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용기 2
학교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면서 드러내놓고 질문한 적은 없지만 속으로 저항하며 삐딱한 맘을 품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우리가 죄인이라는 거'다. 중학생 때 처음 간 수련회에서 불을 끄고서 종이컵에 담은 촛불을 손에 들었다.
갑자기 죄를 고백하라는데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성격과 분위기상 뭔가를 말했을 거 같기는 하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우체국장을 맡았는데 우체국 임원인 친구들과 함께 호기심에 끌려 편지 한 통을 몰래 뜯어서 읽었다. 한 번 하니 궁금증이 더 커져 반복하다가 우체국을 담당하시던 선생님께 불려 가 꾸지람을 듣고 반성문을 썼다.
그 수치스러움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짧은 인생에서 강렬한 순간이었으니, 어쩌면 고백했을지도 모른다. "제가 친구들 편지를 뜯어서 몰래 읽었어요. 누구는 누구를 좋아해서 고백을 했는데요, 거절당했고요. 누구랑 누구가 지금 사귀고요. 그런 걸 친구들이랑 읽으면서 웃었어요. 잘못했어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했을지도.
청년이 돼서는 '그래, 교회가 그런 곳이지, 삶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잖아? 시험 떨어지고, 취직 안 되고, 아프고, 이혼하고... 인생이 안 풀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죄인 맞을지도.'처럼 냉랭한 마음일 때가 적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살고 법도 잘 지키는데 도대체 왜 죄인이라는 거야?
출한국 후 6년의 광야 생활 동안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튀어나왔다, '나 죄인 아니거든.'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수없이 들었던 원죄, 원죄가 말이 되나?
천지창조 후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행복하게 살았지. 하나님이 명령하셨어, "선악과만 빼고는 맘대로 먹으렴." 뱀이 하와를 유혹했지, "선악과를 먹어. 얼마나 맛있는 줄 알아? 그걸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어.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는 거야. 하나님이 왜 그걸 먹지 말라고 했겠니? 자기만 가지려고 그러는 거지."
호기심인지 식탐인지 어떻든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하와는 선악과를 따서 먹었어. 근데 맛있잖아? 아담을 불러서 권했지. "너도 먹어봐. 진짜 맛있어. 그리고 이걸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아담도 하와처럼 선악과를 먹었어. 하나님이 아셨지. "아담아, 너 왜 선악과를 먹었니?" 아담은 말했어. "하나님이 제 짝이라고 지어 주신 하와가 먹으라고 하잖아요." 하와도 말하지. "뱀이 저한테 먹으라고 했어요."
'둘 다 되게 비겁하네, 그냥 "먹지 말라고 하신 건 알지만 너무 궁금해서 먹었어요. 죄송해요."라고 했으면 얼마나 멋있었겠어? 하여튼 인간이란 존재는..'이라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말할 처지가 아니다.
출한국 후 가장 큰 고통은 아침에 눈 뜨고 할 일이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밖에 없다는 거였다. 대학 진학 후부터 중고등학생들에게 국어와 영어 등을 가르치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수입이 없던 달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없던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경험 없는 상황을 나이가 차서 갑자기 마주하게 되면 사람이 생각보다 크게 요동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집안일에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자 시선이 아이를 향했다. 시시콜콜 판단했다. "그게 아니지, 왜 그렇게 하니?" "그것밖에 못 하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잖아." 신기하게도 안 되는 것만 보였다. 잘하고 있는 게 아예 안 보였다. 아이는 진저리를 쳤다. 안 그래도 십 대 중반, 전두엽이 심하게 가지치기를 하며 정서가 불안정하고, 편도체가 민감한 아이들은 감정이 요동친다는데, 거기에 한 술 더 떠 부모가 부채질을 했다.
'그럼 부모가 가르쳐야지,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게 부모잖아? 바른 길을 알려주는데, 도대체 왜 따라오지를 못하는 거야?' 이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그 무렵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이들과 집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모가 많아지며 교회에서 10주 과정의 부모학교를 줌으로 열었다.
게리 토마스의 "부모학교", 진 플레밍의 "자녀 양육, 그 고귀한 부르심", 테드 트립의 "마음을 다루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 부모학교를 통해 성경적 양육관이 담긴 책을 깊이 있게 접하게 됐다. 말로만 부모였지 부모가 되려고 애쓴 적이 없었다. 정말 몰랐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녀 양육'이라는 사명을 주셨다는 걸.
주어진 사명은 망각한 채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아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잘못을 찾아내기 바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왔다. '아, 잘못했구나.' 내 안에 죄가 있었다. 인간의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 자리에 앉았다. 내게 주신 생명을 존재 자체로 귀히 여기지 못하고 기능을 발달시키려 애쓰면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벌컥 화를 냈다. 생명이 시들어간다, 나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허락지 않으셨다. 판단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면 생명이 시든다. 하나님은 당신과 관계를 맺고 땅에 속한 모든 생명을 다스리며 서로를 사랑하라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이 할 일은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수평적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일뿐이다.
안타깝게도 뱀의 꼬임에 넘어간 인간은, 더 정확히는 호기심, 탐욕, 교만 같은 욕망에 굴복하고 만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다. 어린 시절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친구들의 편지를 몰래 뜯어본 나처럼 하와는 에덴동산의 한가운데 탐스럽게 열린 선악과를 먹었다.
우리는 종종 판단한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특히 미성숙한 채 부모 자리에 서면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자녀를 판단하고 비난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길러 내라고 사명으로 주신 생명임을 망각한 채 잠시 속한 땅에서 빛나게 하려고 지식과 능력을 갈고닦게 하는 데 마음을 쏟는다.
나는 선악과를 먹은 하와의 후손으로 뼛속 깊이 사람을 판단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수시로 하나님 자리를 넘본다. 광야 생활은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원죄를 표면으로 솟아오르게 했다. 그리고 이제야 고백할 용기를 낸다, 나는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