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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 Jan 13. 2022

7년 장기 연애, 나라고 왜 이별을 생각 안 해봤을까

연애 3년 차에 이별을 말하다.

남편과 만난 지 어느덧 10년째. 7년 연애하고 결혼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권태기는 없었어?"


왜 없었겠나.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걸 넘어 이별까지 생각했던 시기가 당연히 우리에게도 있었다. 


나의 권태기는 연애 3년쯤 찾아왔다. 그 당시 나는 직장을 이직했는데 그동안 내가 일했던 팀보다 볼륨이 훨씬 크고 업무량이 엄청났다. 게다가 내가 처음 해보는 분야라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평가를 당했다. 그때는 신입이고 어려서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일에 완전히 매몰되었던 거 같다. 머릿속에 오늘 할 일 밖에 입력되지 않았고 '나'라는 존재를 잃어가고 있었다. 일하는 로봇이었달까. 


이러다 보니 남친에게 연락은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남친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원래 없던 사람처럼 내 생활에서 남친이라는 존재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커플은 권태기를 맞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우리 라기보다는 내가 이 관계에 권태기를 느꼈다.


그때는 참 심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흔한 스토리이다. 대중매체에도 많이 나오지 않나. 청춘 드라마 속 단골 스토리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거다. 살다 보면 연인보다 내 인생의 커리어라고 생각되는 '무언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게 직장일 수도 있고, 상사일 수도 있고, 상사와 함께 가는 주말 등산일 수도 있다.


그 순간이 왔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남친에게 미안하다' 였다. 하루 종일 연락을 못 할 때도 있었고, 한 달에 1번 볼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든 생각은 '불편하고 귀찮다'였다. 이 수준까지 왔을 때 나는 남친에게만 이런 감정을 느낀 게 아니었다. 번아웃이 오기 시작한 나는 먹는 거도 귀찮고 가족과 말하는 것도 귀찮았다. 일도 바빠 죽겠는데 그 외에 것들에게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별을 입에 올렸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놀라워한다. 그렇게 깨가 쏟아지는데 헤어지려 했다니.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묻는다. 어떻게 그 위기를 보내고 결혼할 수 있었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나 뻔하지만 '일보다 중요한 건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친은 폭주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나를 묵묵히 기다려줬다. 일 때문에 심신이 점점 지쳐갈 때 남친은 조용히 옆에 있어줬다. 그때쯤 나는 깨달았던 거 같다. 이렇게 사는 건 아는 게 아니구나. 정신을 차린 나는 어느 정도 이력을 쌓은 후에 회사를 나왔다. 


남친은 지칠 대로 지친 나를 데리고 일본 여행을 갔다. 비행기표부터 호텔까지 남친이 전부 예약했다. 3박 4일 동안 그 어떤 방해물 없이 남친과 시간을 보내니 새삼 내가 왜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됐는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연애초 느꼈던 설렘과 두근거림이 다시 느껴졌다. 


우리의 첫 권태기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가 아닌 상황에 의해 만들어졌었다. 오래 연애하다 보면 이런 시기는 한 번씩 맞게 되는 거 같다. 우리의 인생 그래프는 마냥 상승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그 곡선에 함께 타고 있다 보니 내려가는 시기에 서로의 손을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거 같다. 


장기 연애를 하는 중에 권태기가 왔다면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건지 외부 상황이 이 관계를 방해하고 있는 건지 잘 판단해봤으면 좋겠다. 눈앞에 힘든 상황에 끝나고 나아졌을 때, 그 사람이 곁에 없어도 과연 나는 행복할까? 나 혼자 온전히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지 한 번쯤 상상해보았으면 좋겠다. 


영원하지 않을 어떤 상황 때문에 어쩌면 진짜 사랑을. 세상 누구보다 나를 위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로맨티스트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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