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커플이 방귀에 대처하는 자세
여보 숨 쉬어 숨!
그런 날이 있다. 유독 배에 가스가 많이 차는 날. 신혼 초엔, 나 혼자 방귀 뀌는 게 민망해서 가스가 차면 약간의 초조함이 밀려왔더랬다. 하지만 이제는 좀 여유롭다. 내가 가스가 차면 남편도 가스가 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마 같은 음식을 먹고, 움직이는 시간도 비슷해서 그런 거 같다.
이런 날은 누가 먼저 조용히 몰래 방귀를 내보내느냐에 따라 '귀여운자'와 '놀리는자'의 위치가 결정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집에선 티 나게 방귀 뀐 놈이 '귀요미'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티 나게 뀐 방귀란 [1. 소리는 없었지만 냄새가 올라왔을 때 / 2. 소리 내서 뀌었을 때]로 나뉘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주로 2번을 자주 뀌어 우리 집의 '귀요미'를 자처한다.
나의 소리 나는 방귀는 연애 때부터 시작됐다. 이 놈의 망할 대장은 구남친현남편 집에만 가면 부글부글 가스를 생성했다. 참다 참다 한계를 느낀 나는 결국 그의 원룸에서 뿡뿡 소리를 내는 참사를 저질렀다. 그때부터 나의 별명은 '뿡뿡이'가 되었다.
반면 남편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내 앞에서 가스를 배출하지 않았다. 7년의 연애 기간은 물론이고 결혼하고 1년이 다 되어 가서도 방귀소리를 오픈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집에서 귀요미 포지션은 내가 독차지하는 건가 싶을 때쯤... 단 1번의 방귀로 남편은 단번에 '슈퍼 울트라 귀요미'로 등극했다.
그날도 유독 배에 가스가 많이 차는 날이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건 소리 나는 방귀고 화장실에서 뀌면 1000% 소리가 울린다는 것을. 짱구를 굴려 묘수를 찾아냈다. 바로 빨래였다. 빨래 돌린다고 베란다 1번. 빨래 넌다고 베란다 2번. 화분에 물 준다고 베란다를 3번이나 들락날락거리자 눈치 빠른 남편은 단박에 알아챘다.
"배에 가스 차지? 추운데 안에서 뀌어~ 참지 말고~ 참으면 독소 쌓여서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않아? 뭐 어때 한두 번 뀌는 거도 아니고 우리 사이에~ 블라블라"
들켰다는 내 표정을 보자마자 남편은 이때다 싶어 입에 시동을 걸었다.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방귀와 독소라는 단어를 열 번쯤 외치고 내 배를 어루만지며 장난을 쳤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시각. 남편은 내게 장난치느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남편의 배에도 서서히 가스가 차고 있었다. 본인의 앞날을 알지 못한 채 나를 잔뜩 놀리고는 남편은 취침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남편은 피곤한지 눕자마자 쌕쌕 대며 잠에 빠져들었고 나는 그 옆에서 웹툰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적만이 가득한 고요한 침실에서 '부-앜-!!' 하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윗집에서 종종 들리던 생활 소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선명한 '그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누구처럼 웃거나 놀리지 않았다. 왜냐 남편은 자고 있으니까. 잘 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생리현상을 보고 놀리는 건 아니 될 짓이라 생각했다.
내가 웃음이 터진 포인트는 방귀 뀐 이후에 있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남편의 '부앜'소리의 놀란 것도 잠시 등 돌려 옆으로 누워 잠든 남편에게서 숨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쌔액-쌔액-하던 숨소리는 어디 가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남편. 그런데... 약 3초의 정막 후 갑자기 코를 골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도로롱... 도로롱..."
나는 온화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귀여워 죽겠네 진짜ㅋㅋㅋㅋㅋㅋ 왜 숨을 안 쉬엌ㅋㅋㅋ 숨 쉬어 숨!!"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푸하하하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 방귀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깼다는 남편. 너무 큰 소리에 본인도 놀라 잠시 숨이 멎었단다. 하지만 내가 아무 말도 안하니 잠든 줄 알고 완전범죄를 위해 코 고는 척 연기를 하다가 나에게 딱 걸린 것이다.
잠든 척한 거도 귀여운데 본인 소리에 놀라 숨까지 멎다니. 정말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지 않은가. 그날 밤 남편과 나는 배꼽이 빠지도록 한참을 깔깔 대며 웃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란 시간. 달달한 로맨스 같던 연애 초반과 달리 어째 점점 장르가 코미디가 되어 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