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풍 Aug 05. 2021

장기 연애후 결혼하니 좋기만 하더라

결혼생활에 관한 내적 주접

오래 사귀고 헤어진 에피소드는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이 들려서 그런지 

사람들은 장기 연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오해가 있는 거 같다. 


남편과 7년 사귀고 결혼했다고 하면 

열에 여덟은 '오래 사귀고 결혼해도 괜찮냐'는 질문을 듣게 된다. 

'신비감이 없다던데, 달달함보다 형제 같다던데, 이미 관계가 식어서 오래가기 어렵다던데' 하는 편견에서 오는 질문. 


사실 나도 결혼 전에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다. 

살면서 들은 장기 연애에 관한 부정적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막상 결혼이라는 뚜껑을 열어보니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장기 연애 후 결혼, 참 좋기만 하더라. 


첫째로 이미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신혼 첫날부터 피 터지게 싸우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양말을 뒤집어 세탁기에 넣었냐느니,

설거지 할 때 물이 튄다거니 하는 

사소한 걸로 시비가 붙는다고 하던데

나와 남편은 이미 쌓인 데이터가 있어서 그런지

상대가 싫어하는 생활습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또 눈에 거슬리는 습관이 있더라도 

어떻게 말해야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고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지.. (내 말을 듣게 할 수 있을지^^)에 관한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신혼초 생활이 합치는 과정에서 큰소리 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애초에 우리 남편은 내가 싫어할 만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


남남인 두 사람이 오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건,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고

상대방에게 포기할 건 포기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쟤는 쟤고 나는 나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경지랄까...)

 

상대방의 본모습을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인 상태이기에

어떤 행동을 해도 이해가 되고

우리 강아지 또 저러네~^^ 하하 저 #$$%한 매력 좀 보소! 하며 

오히려 사랑스럽게 보이는 매직이 펼쳐진다.


혹자는 오래된 만남의 최대 약점이 '신비감이 없어져서'라고 하는데

나는 이거야 말로 장기 연애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엄마 아빠 가족 빼고 나의 가장 내추럴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세상 유일한 사람이 또 생기는 것이니까.


이틀이나 감지 않은 머리를 질끈 묶고 남편과 대면하고 있을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지경 이 몰골을 하고도 나와 밥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엄마 말고 또 있다니 난 정말 복 받은 사람이구나.'

 

그뿐만이 아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맞추는 즐거움도 크다. 

상대방에 대해 많은 걸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해서 받아치는 맛이 있달까.

(약 2년 전부터 생긴 우리 커플의 루틴인데 

남편이 살짝 삐졌을 때 내가 되려 세게 나가면

남편이 꼬리를 내린다. 쏘 큐트...)


그동안 매스컴에선 이런 걸 '신비감이 없다'라고 부정적으로 봤지만

막상 내가 겪어보니,

참 오묘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은 남남으로 만났는데

나를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 있다니 

내가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신비함과 경이로움이랄까. 

(이게 바로 세상 둘도 없는 인연?)


그러다 가끔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상대방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 즐거움은 두배가 되는 것이다. 


장기 연애의 두드러지는 장점은 또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자칫 '내 시간'이 없어질 수도 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 취미활동, 친구들과의 모임 등을

아내/남편이 의심해서, 반대해서, 싫어해서 못하게 될 수 있는데

우리 커플의 경우 장기 연애로 쌓아 올린 믿음과 신뢰가 있어서 그런가 

결혼 후에도 내 시간을 갖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나와 남편은 10000% 서로의 개인 시간을 존중한다. 

그리고 사실 우리 남편 취미 생활할 때마다 멋있다...)


이것 또한 앞선 말한 것과 같은 결이지만

서로가 무슨 일을 해야 행복하고 삶에 가치를 얻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설령 상대의 개인 시간이 내가 탐탁지 않는 일이라도 해도 

상대가 원한다면 한발 물러나 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거 같다. 




내가 음식을 하면 

남편은 알아서 뒷정리를 하고


남편이 청소기를 밀면 

내가 물걸레로 마무리하고


야근 후 야식 고플 때

알아서 곱창 시켜놓고

맥주 대기해놓는 우리 남편


말하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티키타카 손발 척척


미안 여보 술버릇은

줄이도록 노력할게

이해해줘 고마워


장기 연애 지겹다고

누가 그래 


오래 만나 결혼하니

좋기만 하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0. 결혼생활 주접일기를 펴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