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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빌리티 Jan 02. 2024

'몸'이 준비되어야 '말'을 배운다.

0~5세 말 느린 아이와 소통을 위해 몸을 준비시켜라.

소통을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시켜라 - 감각 통합과 반응 역치  


소아 재활 전문 병원에서 일했을 적, 말이 느려 찾아온 만 5세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매번 학교 끝나고 급하게 오느라 지각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병원에 도착해서는 땅에서 구르거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게 귀찮은 듯이 의욕 없어 보이는 날도 많았다. 단 30초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목표했던 치료를 할 수 없었고, 위험하다는 경고에도 매번 책상 밑에 들어가 숨고, 위험한 곳만 찾아다니며 뛰어 내려서 안전 관계로 진행조차 버거운 날들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치료 일정이 작업 치료 후에 곧바로 언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변경되었는데 너무나도 차분하게 걸어와 의자에 앉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같은 아이라고는 믿어지지를 않을 정도로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이 아이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백 번 올바른 행동을 가르치려 해도 큰 변화가 없던 아이를 작업치료사는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달라졌을까? 나는 치료가 끝나고 바로 아이를 치료했던 작업 치료사에게 가서 질문을 쏟아냈고 이때 알게 된 것이 바로 ‘감각 통합'이었다. 


위에서 말했던 아이처럼, 상당수의 말 느린 아이들은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명확한 장애 진단은 없지만 언어 발달 속도가 느려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 중, 별것도 아닌 일로 난리 치며 떼를 쓰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수업을 방해하고, 규칙을 지키는 게 어려워 지도하기 힘들고,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며 두서없는 대화를 시작하는 아이라면 각성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는 신호다. 


각성이란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반응이 깨어있는 정도를 말한다. 각성은 인간의 심리적인 긴장감과 에너지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적당한 근 긴장감, 균형 감각, 자세 유지 등이 대뇌로 전달될 때 뇌가 또렷해지는 것을 각성 조절이 되어있다고 한다. 각성은 우리의 집중력을 끌어올려 일상에 주어진 일을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돕는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각성 수준이 낮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아침을 먹으면  조금 올라가고, 아침 운동을 마치고 난 후 에는 처음에 비해 신체적/ 심리적 각성 수준이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우리가 쉴 때나 잘 때는 각성 수준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면서 편안한 상태에 머물면서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데, 하루 동안 각성 수준은 누구나 주기적으로 변하고 대부분 사람은 각성 기복을 견디기 위해 적당한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을 본능적으로 찾아서 다양한 상황에 대처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각성 조절이 어려우면 주의력 발달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정보 처리 능력이 저하되고 결과적으로 수행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전날 밤을 꼬박 새워 피로감으로 인해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 수행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처럼 각성 수준이 낮으면 게을러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고, 불러도 별 반응이 없거나, 피곤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반대로 각성이 높은 아이는 높은 곳을 기어 올라가고,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어려워하고, 계속 뛰고 움직이는 것과 같이 지나치게 활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대회가 열리는 날, 극도의 긴장감은 각성 수준을 너무 많이 올려 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게 되지만 약간의 긴장감은 오히려 주의를 더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러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상태를 ‘최적의 각성 수준'이라고 하는데, 적당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생활 규칙을 지키며 활동하고, 학습에 집중하고, 의사 전달을 원활하게 잘 전달할 수 있어 일상적인 과제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지나친 각성은 긴장감 및 불안을 유발하여 정보를 놓치기 쉽기 때문에 조금 진정시켜 줘야 하고, 반대로 너무 낮은 각성은 집중력이 흐트러져 불필요한 정보에 신경을 너무 쓰게 되기 때문에 뇌를 깨워 신체의 준비 작업을 할 수 있게 활력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이처럼 각성 조절이 어려운 아이들은 선택과 집중이 어려워 밥 먹기, 양치하기, 옷 입기, 씻기 등 필수적인 일상생활 활동에 있어 어려움을 보인다. 그러므로 말을 가르쳐 주기 전에, 아이가 각성을 스스로 조절하는 힘을 길러줘야 하는데, 이를 전문적으로 ‘감각 통합'이라고 한다. 


각성 조절 어려움을 보이는 이유는 ‘반응 역치' 때문인데, 각성 조절의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아이의 ‘반응 역치'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반응 역치란 감각 정보에 몸이 반응하는 지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아이가 자극에 반응을 보이기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양을 말하는데, 아이마다 반응하는 지점은 개인의 반응 역치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감각이 민감한 아이는 반응 역치가 낮아서 일상적인 작은 양의 자극에도 큰 반응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감각이 둔한 아이는 반응 역치가 높아서 큰 양의 자극에도 작게 반응하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한 자극이 주어져야 반응한다. 


쉽게 말해 0.5 리터 크기, 1.5 리터 크기, 3 리터 크기, 이렇게 3가지 다른 크기의 컵들이 1 리터 정도의 물을 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컵은 반응 역치, 물은 하루에 주어진 일반적인 감각 자극을 나타낸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 먹고, 유치원에 가고, 집에 돌아와서 씻고, 저녁 먹고, 자는 것과 같이 하루에 주어진 기대치를 큰 기복 없이 수행하기 위해선 보통 크기의 컵처럼 컵 안에 물이 알맞게 차야 가능하다. 기본적인 생활 방식은 비슷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변수가 생기면, 어떤 자극 정보가 중요한지 아닌지 구분시켜 적절한 양의 물을 컵 안에 담아 유지하는 것이 바로 몸이 학습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그럼 같은 양의 감각 자극을 작은 컵에 부으면 어떻게 될까? 작은 컵은 반응 역치가 낮아 작은 사소한 일상 자극에도 과도하게 큰 반응을 하는 감각에 민감한 아이를 나타낸다. 따라야 할 물 (자극)이 아직 반 이상 남았는데도 컵은 가득 찼을 것이고 그 이상의 물(자극)을 붓게 되면, 물은 넘치게 된다. 


이건 너무 맵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삐뚤어졌고, 너무 꽉 끼고, 너무 가렵고, 너무 뜨겁고… 별것도 아닌 일에 사사건건 투덜거린다고 느껴지는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물이 넘친다는 건 물(자극)의 양이 컵 크기(반응 역치)에 비해 너무 많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므로 불안, 공포, 및 과잉 행동을 보이며 회피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셔츠 뒤에 있는 상표가 너무 거슬려 등교를 거부할 정도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지나가는 친구와 살짝 손가락이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막무가내로 짜증 내는 모습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아이도 자신의 컵 크기를 어느 정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자신이 괴롭지 않게 나름대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물의 양을 낮게 유지하려고 하지만 적은 경험으로 인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일로 짜증 내고 고집부리는 모습 혹은  현재 상황과 무관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대부분 사람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자극에 불편함을 느끼니 불안이 높고,  말도 느려서 자기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것도 한몫하게 된다. 


변기 내려가는 소리에 귀를 막고, 가벼운 신체 접촉을 피하고자 책상 밑에 숨고, 과도하게 입력되는 감각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경험을 피하게 되면서 부정적인 감정표현을 유난히 많이 하게 된다. 특히 기관이나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라면 무엇을 먹고 안 먹고, 하고 안 하고, 가고 안 가고,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상황을 강하게 통제하려는 성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래 아이들은 더더욱 예측할 수 없기에 상대방의 반응을 자신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으니, 환경을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큰 컵 아이는, 같은 양의 물을 부으면 반도 채워지지 않는 만큼 물(자극) 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볼 수 있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영향을 받아 집중이 흐트러져서 하던 일을 끝내지 못하고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 혹은 주의를 끌기 위해 이름을 여러 번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가까이 가서 어깨를 만지며 불러야 돌아보는 아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큰 컵은 반응 역치가 높아 큰 자극에도 작게 반응하는, 쉽게 말해 감각에 둔한 아이를 말한다. 큰 컵 아이들의 뇌는 수많은 감각 정보를 필터링하지 않고 몽땅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떤 정보를 걸러내고 어떤 정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구분을 어렵게 느낀다.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반응하기까지 일반적 양의 자극보다 더 많은 입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받는 정보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컵 안에 물이 알맞게 채워져야 균형 잡힌 하루를 보낼 수 있는데 반해, 항상 컵의 반 이상이 비어  있는 큰 컵 성향의 아이는 주의 집중력이 현저히 부족해 보이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컵의 남은 공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두 가지 다른 형태의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큰 컵 아이는 매우 활동적으로 반 이 상 비어 있는 컵을 채우려 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몸을 깨워 더 강력한 자극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나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지내려고 노력한다. 전문 용어로  ‘자극 추구 성향'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런 아이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탐색 활동이 높아 항상 바쁘게 뛰어다니고, 무엇이든지 입에 넣고 씹어보고, 물체나 사람에게 쉽게 부딪히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활동량이 유독 많다. 


내 아이가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감각 입력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하여, 적절한 방법으로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줘야 별다른 기복 없이 일과를 수행할 수 있다. 한편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큰 컵 아이는 스스로 몸을 깨우려 하지 않아 항상 무기력해 보이고 활동의 전환을 유난히 어려워한다. 감각 정보에 전반적으로 느린 반응을 보이고 지저분한 얼굴, 손, 옷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등 모든 게 게으르고 서툴러 보일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은 신생아, 영유아 시절, 한 시간도 혼자 놀 수 있고 손이 많이 안 가는 유난히 ‘쉬운 아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감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보이는 아이들은, 비유하자면 정글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사자를 만난 것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눈앞에서 사자가 다가오고 있다면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위험에 대항할 것인지 혹은 도망갈 것인지 판단하게 되며,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 모드로 전환하게 된다. 아이 스스로 감당하고 소화해 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거나 아이가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우선 그 상황에서 아이를 구해내서 안정감을 준 후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아이가 안정감을 느껴야 자신이 관심 있는 활동에 참여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다음에 또 하고 싶은 내적 동기가 생긴다. 또한, 주변 환경을 탐색하며 새로운 정보를 얻고, 상호작용을 통해 배움이 확장하게 된다. 그에 반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조차 없고, 이는 아이를 제한된 상호작용만이 있는 환경 속에서 자라게 한다. 


감각통합 어려움이 있는 아이라면 자신이 정확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모를 수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어떤 상황이 자신에게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고, 위에서 설명했던 모습으로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내 아이를 잘 관찰하면서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감각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바로 상호작용의 기본이 되고, 진정한 소통을 위한 주춧돌이 된다. 

소통의 또 다른 핵심은 상대와의 공감 능력에 있다. 감각 정보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아이는 상대방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어려워한다. 예를 들어, 내가 너무 힘들다고 상대방에게 상담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상대방이 나에게 ‘그런 게 뭐가 힘드냐?’라는 반응을 보이면, 그때부터는 나에게 공감해주지 않는 상대와의 대화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같은 경험을 해도 다르게 해석하다 보면,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렵고, 상대와의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어서 자연히 소통이 줄어들게 된다. 아이가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에 지속해서 노출되게 돼서 가장 큰 문제는 부모와의 신뢰 문제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신뢰를 쌓지 못하면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노력을 해도 큰 성과를 보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의 감각통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해 주기만 해도 아이는 자신이 이해받는 느낌을 받게 되어 신뢰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말을 가르치려 하기 전에 감각적인 어려움 때문에 유발하는 장애물을 해소하게 해주는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이가 스스로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노출 빈도를 높여 상호작용의 기회를 다양하게 주는 게 부모로서 아이를 돕는 일이다. 언어는 학습으로 얻기보다는 적절한 상황에서 듣고, 자주 사용해 보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뛸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걷기'와 같은 기본 능력을 키워주면 언어 발달뿐만 아니라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 등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아이의 언어 발달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아이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장려한다면 ‘~주세요' ‘~해주세요’라고 대본 읽듯이 말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고 의미 있는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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