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의 어느 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나는 이십 대 중반의 내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스물다섯의 나는 너무 늦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너무나 애매한 나이라고.
스물다섯, 나의 첫 직장은 강남역에 위치한 수 천 개의 치과 중 하나였다. 학부 졸업의 막바지에 마케터의 꿈을 꾸고 있던 난 진료실이 아닌 치과의 가장 안쪽 구석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비전공자로서 마케터로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쌓을 기회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나의 첫 출근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내가 근무하는 이 치과를 환자들에게 최고의 치과로 만들고 말겠다고 호기롭게 출근했지만 그 설렘과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이 많지도 사람들이 어렵지도 않은 어찌 보면 ‘꿀’이라고 할 수 있는 직장이었지만 나의 가치관과 너무나 상반되는 곳이었다. 환자들에게 최고의 치과로 만들기 전에 나에게도 최고가 될 수 없는 곳이었다. 아니, ‘최고’가 되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최소’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그곳.
‘최소’도 되지 않는 곳을 타인에게 홍보할 수는 없었다. 나는 큰 딜레마에 빠졌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겠다 선언하고 나왔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직장을 다른 직장과 비교할 만한 기준과 경험이 부족했다. 그저 부족한 나의 사회생활이 문제라 생각했다. 어딜 가더라도 이 곳과 비슷할 것이라고 위안하며 버텨냈다.
하루가 한 달이 되었고 한 달이 구 개월이 되었다. 매일매일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살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은 흘렀다. 직장이 맞지 않으면 그만두고 다시금 마케터라는 꿈에 도전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찾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렇게 버티게 만들었던 건 내가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일 년을 휴학을 하고 졸업을 했기에 이미 동기들보다 한 해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을 한 상태였다. 졸업 후에 전공분야가 아닌 마케팅이라는 전공 외 다른 분야에 도전하면서 본 전공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 일 년이라는 시간이 더 늦어지는 셈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늦다는 것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조금 더 걸어가 봐야겠다는 생각보다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가 가보고 싶었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보다는 기존의 길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직장에서의 경험이 썩 좋은 추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때 느꼈던 것처럼 남들에 비해 내 인생이 한없이 뒤처지고 망한 것은 아니었다. 길게 보면 인생의 한 점이었을 뿐인데 무엇이 그렇게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던 걸까. 하지만 이런 사회생활의 첫 경험 덕에 그때보다 더 시간이 흐른, 그때의 기준으로 보면 늦어도 너무 늦은 삼십 대의 지금 과감하게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사실 고민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경력이 애매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연결선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경력을 잠시 멈추고 일이 아닌 새로운 공부를 선택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그 고민의 끝에는 과거에 고민하던 이십 대의 내가 있었다.
오늘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 중에 가장 성숙한 날이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이십 대에게 말한다. 나의 지금은 절대 늦지 않았다고. 오히려 나의 다양한 경험과 선택들이 남들보다 늦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길을 돌고 돌아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삼십 대의 내가 본 이십 대의 나는 절대 늦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 언젠가 맞이할 사십 대의 내가 지금이 늦었다고 고민하고 있는 삼십 대의 나를 본다면 과연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보았다. 지금이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 이노라. 그러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응원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