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매번 설레는 그 벨을 누르며
누군가에게는 벚꽃축제와 함께 시작되는 아름다운 때다. 그 좋은 계절, 벌써 3년째 우린 전쟁을 치른다. 아마 앞으로도 매년 그럴 것이다.
그 전쟁이 며칠 전 끝났다. 그리고 맞는 주는 아이러니하게도 부활절 주간이다.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는 행사이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꽤나 큰 짧은 휴가철이다. 6일간 30만 명이 관람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를 치르고 지쳐버린 이 도시는 고요한 시간을 맞는다. 매년 그렇다.
전시가 끝나고는 옆집 할아버지 다리오와 거의 매일 저녁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어제 로산나 올란디 갤러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나만 모른단다. 답답했는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미 문을 닫은 갤러리 앞에서 인터폰으로 몇 마디 하니 문을 열어주었다. 다리오는 밀라노를 주무대로 브라질 중국 등지에서 40년을 활동한 건축가 그리고 Toilet Paper 토일렛페이퍼의 피에르파울로는 밀라노에서 현재 가장 핫한 아티스트다. 그 안에는 역시 피에르파울로의 작업들이 여러군데에서 눈에 띄었다.
나만 처음 가본 그곳을 둘러보며, 얼마나 다리오와 피에르에게 고마웠는지.
결국 그 인연을 시작으로 올해 4월 우리는 로산나 올란디뿐만 아니라 Marva Griffin과도 함께 밀라노 전시를 치렀다.
2014년 밀라노에서의 만남 후, 5월 뉴욕과 9월 런던 전시를 이어나가며, 그 때마다 보게 되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로산나가 있었고, Marva Griffin이 있었다. 이 둘은 새로운 디자인을 세상에 소개하는 데 있어 유명한 라이벌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우린 그 둘 모두와 함께 밀라노 전시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Marva와 Rossana 모두가 우리에게 전시를 제안하면서 올해 4월 전시가 더욱 재밌어졌다. 서로가 함께 이름을 노출하길 원했고 그런 만큼 더 좋은 기획들이 오갔다. 난 전시가 코앞인 2월 전시를 위해 다시 한번 밀라노를 다녀와야 했고 4월은 금방 찾아왔다.
설레었다.
위 사진은 지난 2월 Wallpaper Award에서 찍힌 Rossana와 Marva가 함께 찍힌 진귀한 사진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사이에 웃고 있는 저 남자는 피에르 파울로의 Toilet Paper, Diesel Living과의 콜레보로 식기 디자인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브랜드 Seletti의 오너 Stefano Seletti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디자인 행사인 밀라노 가구 박람회 ISALONI. 25년 전, 그 중심에서 35세까지만 참여 가능한 영디자이너전인 Salone Satellite를 출범시킨 사람이 Marva Griffin이다. Satellite는 현재도 매년 160여 개의 브랜드를 초청하는 대규모의 디자인전이다. 25년이 지난 올해로 10,000명의 디자이너를 배출한 기록과 함께 여전히 밀라노 가구전의 메인무대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 많은 도시에서 영디자이너전이 열리지만 Satellite가 최초였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박람회가 이 행사에서 디자이너를 발굴한다 하니 Marva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샤넬과 함께하던 패턴 디자이너였던 로산나는 2000년 초반 밀라노에 거대한 갤러리 Spazio Orlandi를 열며 단숨에 Taste-Maker, Queen of Design라는 별명과 함께 디자인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되었다. 그녀와 함께 커리어를 시작했던 이들로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Jaime Hayon, Nacho Carbonel, Nika Zupanc이 대표적이다. 매년 4월이면 밀라노에서 30여 명의 디자이너를 초청해 전시를 하며, 이 전시는 밀라노 박람회 기간 중 꼭 들러봐야 하는 핫스팟이다. 더욱이 박람회가 끝난 이후 계속되는 디자이너 발굴로 1년 내내 새로운 디자인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기에 그 유명세가 대단하다.
대규모의 전시를 통한 영디자이너와 업계의 이목을 모두 잡은 Marva, 그리고 연중 지속되는 전시로 디자이너의 상업적인 성공을 이끌어가는 Rossana. 이 둘은 업계에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그녀들 사이의 강렬한 라이벌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이 오묘한 경쟁이 지금의 밀라노 디자인계의 트렌드를 항상 젊게 유지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저 사진에서 둘 사이의 흐르는 긴장감과 Stefano Seletti의 행복함을 느낄 수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