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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용서할 수 없는 마음

나의 자유를 위해, 지나간 그대로

by Billy 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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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 용서할 수 없는 마음

"나의 자유를 위해, 지나간 그대로"


용서할 수 없는 마음, 죽을 때까지 떠오를 기억, 함께 떠오르는 서러운 감정, 가슴속 깊게 박힌 상처. 그런 경험을 준 누군가가 있나요?


저에겐 제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저는 여자 넷, 남자 하나인 가정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말로만 들으면 딸 부잣집에 귀한 막내아들, 세상의 모든 예쁘고 행복한 것을 다 경험했을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제 소개를 하면 깜짝 놀라며 ‘예쁨 많이 받았겠네~’라는 말을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듣습니다.


그런데 왜 그분들이 기대하던 것과 달리, 제게 아버지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요?


저는 제 아버지에게 큰 기쁨이었을 겁니다. 네 명의 딸 이후 힘겹게 얻은 아들이었고, 본인이 세상을 등진 후에도 가족을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과 미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그의 기억은 어두운 밤, 이불속에 숨은 누나들과 나의 숨소리, 유리그릇이 깨지는 소리, 용서를 구하는 말소리, 매 맞는 소리, 울음소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보호만 받아야 하는 나의 두려움이 섞인 한숨 소리입니다.


썩 좋지 않은 기억들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억 너머 어딘가에 아버지와 함께한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억지로 떠올리려 노력해야 두어 개, 그마저도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기억과 감정일 뿐입니다.


이런 기억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낯선 싱가포르에서의 방황 중에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꿈 앞에서도, 권고사직 후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먼 시드니에서 여러 일을 전전하며 하루를 버텨 내는 중에도, 어김없이 떠올라 과거의 상처를 불러왔습니다.


모든 역경의 순간, 나의 화살은 항상 그를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리 없는 외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화는 내 마음 안에서 자라나 결국 나를 집어삼켰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화가 나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5년간 만난 전 연인과의 이별까지는요.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 했던가요?


그렇게 싫었던 그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전 연인과 헤어진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울, 불안, 공황의 시간을 지나며 감정을 관리하기 위해 읽었던 심리학 서적들을 통해, 저는 나의 모습이 아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다니는 방랑벽, 여러 여자에게 쉽게 흔들리는 마음,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을 좋아하는 성향, 소중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폭력적이고 배려심 없는 모습까지.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 그대로가 나에게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스스로 믿고 있던 ‘나의 모습’과의 괴리감 때문이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지난날의 나였다면, 받아들여야겠지요.


이제 알았으니,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한 장, 두 장 책을 더 읽어가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유튜브, 책, 강의 같은 수많은 자원을 통해 내 감정을 이해하고 회복해 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제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고작 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그리고 자기 자식만 귀하고 남의 자식에겐 폭력적이던 작은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의 모습.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내와 다섯 자녀, 그리고 어머니까지 부양하며 살던 그의 삶 말입니다.


물론, 그런 그의 삶을 이제야 떠올린다 해서 그가 했던 행동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만약 그가 나와 같은 시대와 환경에 있었다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제 아버지도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 한동안은 전보다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내면의 화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용서할 수 없지만, 용서를 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내 상처에 대한 보상은 누가 줄 수 있는지. 불붙은 화살은 날아갈 곳을 잃고 제 안에서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버지와 통화할 때였습니다.


걱정 섞인 말투로 제게 건넨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저는, 전화기 너머로 소리치며 분노했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은 후 거친 숨을 내쉬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그의 입장을 이해했지만,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은 여전히 저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잠시 후 마음을 가다듬은 저는, 문득 그 분노가 아버지뿐만 아닌 제게도 남아 그 기억을, 그 상처를 더 공고히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 받은 큰 아픔의 기억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 겪은 어려움은 결국 제가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그 책임을 저 대신 누군가에게 돌리며 자신을 정당화하고, 피해자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선택의 무게에 내가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나 스스로를 향한 비난의 화살을 내려놓기 위해, 나를 그리고 그를 용서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용서는 이런 악순환을 멈추는 일이다. 용서가 정말 자비로운 선물이라면 그것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단호했더라면, 더 똑똑했더라면’ 하며 자책하는 나에게,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내가 받은 상처와 피해를 없던 일처럼 덮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피해는 잊지 않되 나의 분노가 내 인생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이 바로 용서다.”
– 가타다 다마미,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용서는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용서는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결심이었습니다.


용서란, 내가 겪은 역경이 누군가의 탓으로 남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며, 그저 지나간 하나의 사건으로 놓아주고, 그 사건들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나아가, 그 모든 경험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도록 허락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용서한다는 건 상대의 행동을 용납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그들의 감정적 피해자 상태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뿐이다.” – 트래비스 브래드베리, 『감성지능 2.0』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이 쉽게 따라주지 않는 일이기도 하지요. 알고 있어도 문득 떠오르는 기억과 감정은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괜찮다. 죽도록 미워하는 것이 정상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용서하려고 애쓰기를 그만두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용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용서하지 못하는 것을 질책하거나 설교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용서하려고 애쓰기를 그만둘 것을 가장 먼저 권한다.”
– 가타다 다마미,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때로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용서하려 애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용서할 수 없다면, 충분히 미워하고, 분노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를 향한 미움과 분노가 다시 나를 파괴하지 않도록. 그때 일어났던 일을 하나의 지나간 ‘기억의 조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은 필요할 듯합니다.


얼마 전, 집에 내려가 어릴 적 앨범을 꺼내 보았습니다. 그리고 10권이 넘는 앨범 속 빼곡한 사진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내 기억엔 아팠던 상처의 기억이 더 많았지만, 그 수많은 사진이 증명하듯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속 우리 가족은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담기지 않았다면 담길 수 없었을 다정한 장면들이, 아버지의 카메라 너머에 있었습니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차갑고 무서웠던 그의 모습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그저 그 사랑을 표현하고 전달할 방법을 몰랐던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제 어릴 적 그를, 여전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이해합니다. 그렇기에, 그때의 기억을 이미 지나간 과거로, 그저 있는 그대로 두고자 합니다.


용서할 수 없지만, 그렇게 두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가 아닌 당신 자신을 위해, 그때의 기억을 지나간 기억으로, 있는 그대로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당신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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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저는 제 마음속에 담겨있던 아픔의 기억들로 인해 제 아버지를 트라우마를 남겨준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힘든 기억만 남겨주고, 어려운 시간을 버텨내고 있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보단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부족한 제 모습을 탓하기만 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그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이후 그의 어릴 적 경험 역시 저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그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탐구는 그를 용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향한 화살,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그 날카로운 감정의 상처를 벗어던지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은 저를 ‘가타다 다마미’ 작가의 책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와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이제야 겨우 ‘용서’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용서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도록 미워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합니다. 용서할 수 없다면, 애써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것조차 그만두라고요.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는 마음, 그 마음마저도 내려놓아도 된다는 거니까요.


작가는 말합니다. 분노도, 복수심도, 반드시 인정되어야 한다고.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고, 억압된 감정은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나를 아프게 한 사람에게 화를 내지 못한 대신, 그 분노를 내 안으로 삼켜서 스스로를 더 갉아먹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용서의 시작은 분노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미움도, 질투도, 억울함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내가 겪은 진짜 감정이라면 그것을 솔직하게 마주 봐야 한다고요. 나를 위한 용서란, 그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의 손에 삶의 결정권을 다시 쥐는 일입니다.


책 속엔 ‘화가 났을 때는 화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지, 우리 자신이 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내가 분노 그 자체가 되는 게 아니라, 그 분노를 느끼는 나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야만, 나를 해쳤던 과거의 누군가가 지금의 나를 조종하지 않게 됩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아닌, 내 선택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제게 알려준 건, 용서란 화해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용서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과 다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때론 용서는 나를 위한 선택이고, 나만의 평화를 위한 결심입니다. 용서의 진짜 목적은 그 사건이 나의 분노와 원망으로 평생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하려는, 아주 단단하고 조용한 자기 돌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자신만이 내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 용서할 수 없는 마음으로 지쳤다면, 그 사건을 지나간 기억으로 내려놓음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랍니다.


editor 천성민 (@billyche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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