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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lly Cheon Sep 19. 2023

05 싸구려 고급 향기가 준 응원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에디터의 편지


안녕하세요. 언비트 매거진 천성민 에디터입니다.


언비트 매거진을 처음 구상하고, 언비트와 제 소개를 제외한 본격적인 콘텐츠를 발행하기 시작한 지 3주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지금,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언비트에 찾아주시는 분들은 채널 상단에 보이는 대략적인 팔로워 수, 콘텐츠 개수와 같은 가시적인 숫자들만 보시겠지만 저는 시시각각 변하는 팔로우 현황이나 디엠, 스토리 등을 통해 전달받는 다양한 분들의 반응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클럽에서 명상하기’ 콘텐츠를 발행할 때까지만 해도 ‘이게 정말 먹힐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콘텐츠를 발행한 이후 거기에 대한 반응과 주변 또 여러 독자분이 주시는 반응을 보며 이 채널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제가 좋아하는 것과 느낀 것들을 공유했을 뿐이고, 누군가 이것을 좋아해 주지 않는다면 언비트의 성장은 더뎌지거나,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주신 호응 덕에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용기를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꾸준히 나아가겠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싸구려 고급향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싸구려인데 고급스러울 수가 있을까요? 제 생각은 ‘그렇다’입니다. 세상에는 비싸고, 멋지고, 유명한 그런 것들이 넘쳐나고 싸구려 제품은 넘친다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습니다. 비교적 비싸고, 멋지고, 유명한 것들이 싸구려에 비해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누구나 희소성을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에게 좋았을까요?


비싼 신발, 비싼 음식이라 할지라도 개개인이 느끼는 것은 모두 다르기에 어떤 이에겐 긍정적인 경험을 심어주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겐 그저 그런 경험을 주기도 합니다.


싸구려도 그렇지 않을까요? 가격이 싸고, 사람들의 평가는 나빴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다른 사람과 다르게 느껴졌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법한 일들입니다.


저는 가격과 유명세,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규정을 벗어나 눈을 돌린다면 ‘나 자신의 기준’을 제외한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뭐라 하던 나에게만 좋으면 그뿐이니까요.


그럼, 이번 이야기를 통해 왜 싸구려 향기가 고급 향기처럼 느껴졌는지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비트 매거진 에디터 천성민 드림


파트01 ‘드러나지 않는 몸부림’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저는 1남 4녀 집안의 막내이자 장남입니다. 그런 동시에 (나이 드신 부모님을 제외한) 누나들과 매형들에게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입니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이미 동성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가진 느낌은 아마도 사랑이라거나, 애정과 같은 느낌이 아닌 제가 바라는 ‘남성성에 대한 동경’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성애’라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인지한 것은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인터넷과 컴퓨터 사용이 대중적으로 발달하게 된 시기인 1990대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통해 기존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고, 그 당시 저는 아직 초등학생이었지만 또래의 누구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탐색에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땐 나모웹에디터를 이용해 포켓몬 도감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버디버디’ 메신저를 이용해 온라인 음악 방송을 하고 있었으니 더 이상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웃음)


하지만 저는 인터넷이라는 세상을 통해 저를 무언가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단어를 알게 된 이후 더 이상 ‘나’로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앞서 말한 ‘1남 4녀 집안의 장남이자 막내’라는 타이틀만으로 충분히 느끼시리라 예상합니다. 저도 느낍니다. 그 타이틀이 가지고 있는 책임감의 무게 말입니다. 더구나 ‘천’ 씨라는 비교적 희귀한 성씨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책임감은 항상 막중했습니다. 이것들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계속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나를 묶어버린, 나를 규정 지은, 명확한 단어의 의미를 깨뜨리려고 말입니다. 


파트02 ‘조용하고 큰 외침’


나를 그저 나로서 봐주길 바랐습니다.


저의 큰 누나는 제가 초등학생일 무렵, 프랑스라는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어린 나이였고,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둘 사이에 있었기에 누나가 어떤 사정을 가지고 그 먼 곳으로 떠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먼 곳, 더 넓은 곳,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일 것만 같은 그런 곳으로 떠났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몇 년 후 큰 누나가 (지금은 아닙니다만) ‘키아누 리브스’를 닮은 백인 남자를 결혼 상대로 정하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저는 약간의 희망 같은 것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 최소한 한 명은 나를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실낱같은 희망이었습니다. 후에 입대를 마음먹고 큰누나가 살고 있는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작은 희망에 기대를 걸고, 타국 멀리에서 동성애에 대한 평등한 인식을 가진, 저에겐 꿈의 나라 같은 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 사람이라면 나를 보여줘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너는 아직 어리고, 이성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헷갈리는 거야. 나중에 달라질 거야.”


제가 먼저 나를 보여줬을 때 돌아온 대답은 제가 바라던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장남만큼, 장녀라는 책임감과 저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 당시 큰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 나아가고자 했던 제 기준에서 바라던 답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가족과 멀어지길 선택했고,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다른 곳, 다른 사람을 찾기 위한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파트03 ‘누나, 나 게이인 거 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나를 찾기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엔 ‘상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인, 직장, 빚만 남은 통장.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상실한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마지막 남은 저 자신까지 상실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2023년 7월 16년 만에 큰누나가 사는 유럽을 방문하기로 계획할 때까지만 해도 저의 목적은 오로지 ‘여행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스위스, 뉴샤텔이라는 작은 도시와 게이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바르셀로나를 방문해 누나와 매형, 귀여운 조카를 오랜만에 만나고, 게이 라이프를 신나게, 즐겁게 즐기다 돌아오는 것, 그뿐이었습니다. 매형과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매형과 둘이 밤 10시인데도 해가 지지 않는, 아름다운 뉴샤텔 호수가 보이는 선술집에서 쌉싸름한 맛이 매력적인 IPA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도중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36살이나 된 저의 결혼 문제를 제가 아닌, 누나에게 떠넘기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천 씨 가문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상, 아무리 피하고, 외면하려고 노력해도 우리 가족의 행복은 내 손에 달렸구나. 내가 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내가 가진 아픔도 보듬을 수 없고, 우리 가족들의 행복도 아무것도 바랄 수 없겠다.


결심했습니다. 다시 한번 나를 보여주기로.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나를 보여주면 그뿐. 가족일지라도 나의 인생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고,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한 번 더 용기 냈고, 그 큰 용기를 낸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기대와 다르다면 이젠 그저 나로서 홀로 살아가면 그뿐.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날 밤, 큰누나 집의 작은 테라스에 앉아 별 볼일 없는 안주와 담배,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누나와 못다 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프랑스로 떠난 진짜 이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긴 이야기들과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 나눴습니다. 저는 성격상 진지한 얘기를 진지하게 시작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되든 말든 한번 던져나 보자는 느낌으로, 하지만 큰 용기를 품고 말했습니다.


“누나 나 게인 거 알지?”

(찰나의 정적)

“알지. 야, 나도 게이 친구도 있고, 트랜스 친구도 있고 다 있어. 신경 쓰지 마. 너만 행복하면 돼. 너만 신경 써. 내가 인생 살아보니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한 거더라. 그러니까 가족도 신경 쓰지 말고 너 행복한 대로 살아”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바랐던 건 나를 받아주려는,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여기 ‘나’라는 한 사람이 가족으로써 ‘있구나’ 딱 그걸 바랐습니다. 그런 노력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그리고 나를 그저 나로 바라봐 주어 고마웠습니다.


세상에 한 발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파트 04 ‘싸구려 고급 향기가 준 응원’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소망했습니다.  80년 세월을 살아 변화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부모님은 제외하더라도, 누나들만큼은, 매형들만큼은 나를 나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제 가족들을 (아직도 조금 오글거리지만) 사랑합니다. 하지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정상적인 형태의 가족’을 저는 바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갈망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 나는 ‘다르다’라는 생각 속에 나를 가뒀고, 그 안에 갇혀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든 감옥을 나와 가족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큰 용기가 필요하기에 언젠가 하겠지 하는 마음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때는 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언비트를 통해 제가 좋아하는 것, 영감을 준 것, 좋은 경험을 준 것들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것처럼 최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추천하고, 어떤 경험을 주었는지 말해주었습니다. 그저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그들도 내가 경험한 것처럼 좋은 영향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랬습니다.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좋아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전에 맡지 못했던 하수구 깊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불쾌한 냄새를 맡았고, 원인을 찾지 못해 급하게 쿠팡에서 두 개 15,000원인 싸구려 디퓨저를 구매해 그 코를 찌르는 싸구려 향기로 이 냄새가 가시길 바랐습니다.


디퓨저를 개봉한 그날 밤, 친구들을 데리고 제가 좋아하는 공간에 갔습니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곳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곳으로 갔었고, 오랜 시간 맛있는 술과 음악을 속에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며 재밌는 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를 여기 데려와 줘서 고마워”


친구 중 한 명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뭉클한 열기가 몸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고맙다고. 바라지 않았던 내 마음에 대한 고마움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야말로 혼자가 아닌 함께 같이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말로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용기를 얻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맙다는 한마디가 때론 나에게, 누군가에게 큰 용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였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개봉한 싸구려 디퓨저 향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싸구려 향이 아닌 고급 향이었습니다.


용기를 얻은 저를 응원해 주는 고급스럽고, 충만한 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싸구려 고급 향기 덕분에 저는 다른 가족들에게 나를 제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코를 찌르는 알코올향이 가득한 싸구려 디퓨저겠지만 그 순간 저에게는 이제까지 맡았던 그 어떤 향보다 가치 있고, 용기를 주는 그런 향기였습니다.


파트 05 ‘존재하는 그대로의 나’


친구의 고마움과 싸구려 향기가 준 응원을 받은 다음 날 저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모든 가족이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변하지 않을 확률이 더 큰 부모님까지 알게 되는 건 모두의 ‘행복’이 아닌 또 다른 힘겨움이라는 것을 저뿐만 아니라 누나들도 알기에 부모님께는 여전히 말할 수 없지만 그 이외 다른 모든 가족에게는 말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교외의 작은 수영장이 있는 캠핑장에 부모님, 누나, 매형 그리고 조카들은 불판 위에 노릇하게 구워지는 삼겹살을 기다리고 있었고, 조카들은 수영장에서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한 번에 보이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느낀 저는 매형, 누나 그룹을 나누어 따로따로 격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먼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구우면서 미적지근한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매형들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매형들 나 남자 좋아하는 거 알지?”


순간 긴장감이 도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적합한 반응을 찾느라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매형 01 : “난 알고 있었어”

매형 02 :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말했다는 듯한 엷은 웃음)

매형 01 : “처남, 처남만 생각해. 서울에 혼자 사는 거도 어렵고 힘들 텐데. 다른 거 신경 쓰지 마”

매형 03 : “나도 알고 있었다. 네가 먼저 말 안 하니까 그냥 말 안 했던 거지. 내 친구 중에도 있어 걱정하지 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아무런 일이 아니라는 듯한 반응 덕분에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아직 눈물을 보일 때는 아니었습니다. 아직 누나 세 명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누나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말했습니다.


“내가 얼마 전에 직장도 잃고, 연애도 끝나고 또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었어.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누나들한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날 받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야.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언제 죽든지 간에 조금이라도 마음 편할 거 같아서 말하는 거야. 이게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는 아빠 고집스러운 성격과 나만 바라보는 것,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 상속 문제랑 내 결혼 문제로 나보다 가까이 있는 누나들이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고 내가 먼저 말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나도 계속 힘들 거고, 누나들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고 언젠가 우리가 돈 가지고 싸우는 날이 와서 서로 사이가 나빠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말하기로 결심했어.”


저의 커밍아웃은 물론 저를 위한 것이 첫 번째였지만, 저뿐만 아닌 다른 가족들이 고집스러운 아버지의 성향으로 인해 마음 상하지 않고, 다 같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 역시 담겨 있었습니다.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딸은 자기 재산을 가질 수 없으니 욕심내지 말고, 바라지도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하는 아버지로 인해 누나들 사이도, 누나들과 저의 사이도 그리 가까워질 수 없었고, 저는 그 문제 이외에도 성소수자라는, 우린 다르다는 자기 인식으로 인해 가족들과 더 가까워질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얼마 되지도 않는 거 욕심나지도 않고, 자식도 못 가질 텐데 그거 들고 있어 봤자 소용도 없으니 내가 죽으면 다 조카들한테 줄 거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며 다시 또 툭 내뱉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나 남자 좋아하는 거 알지?”


역시나 돌아온 반응은 큰누나나 매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고맙게 느껴지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사실 둘째 누나는 제가 중학생일 무렵 이미 저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런 저와 어떻게 하면 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거부감 들지 않게 나를 대해줄지 배우고 싶은 마음에 멀리 서울까지 상담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 상담 끝에 내린 결론은 제가 먼저 말할 때까지 그저 잠자코 기다려 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가족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때를 기다려 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멀리멀리 긴 방황의 끝에 가진 것을 모두 잃고 상실의 늪에 끌려 들어가 나 자신조차 잃기 전, 이대로 죽고 싶진 않다.라는 그 마음의 끈을 겨우 잡았고, 그 끈을 잡고 나온 그곳에 가족이 있었습니다.


마음의 끈을 잡고, 늪을 빠져나와 돌아보니 늪은 없었습니다.


그 늪은 제가 만든 허상에 불과했고, 그 허상 속에 빠져 혼자 허우적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정상적인 형태의 가족’ 역시 내 옆에 있었습니다. 항상.


내가 해야 했던 것은 그저 나로 존재하는 거뿐인데, 나는 나를 내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이 저에게 표현한 고마움과 싸구려 향기가 준 기분 좋은 응원과 나를 나로 봐주는 가족과 그리고 나를 나로서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는 나 스스로의 용기 덕분에.


“나는 이제 나 자신이자, 두려울 거 없는 성소수자입니다” 


파트 06  ‘콜린스 인센스 스틱’

싸구려 고급 향기가 준 응원

 

우리는 광고의 파도 속에 하루하루 휩쓸리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고, 인플루언서,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좋은 것’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통해 전해지는 모습들이 내가 되어야 하는 모습인 양 생각합니다. 비싸고, 유명하고, 트렌디한 것들을 쫓으며 휩쓸리듯 흘러가면서 그 속에 나를 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싸구려 향기가 준 응원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쫓던 것들이 좋은 영감과 만족감을 주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며 오히려 주변의 하찮게 느껴지는 것들이 때론 더 큰 영감과 응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얼마 후, 즐겨보던 유튜버의 영상을 통해 콜린스의 인센스 스틱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두어도 튀지 않고 잘 어울리는 감성적인 스틸케이스 안에 70개의 스틱이 들어있는 그것은 가격 측면에서 싸구려입니다.


하지만 저는 “EVERYDAY GOOD MOOD”라는 브랜드 슬로건에서 기분 좋은 위로와 응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당 200원꼴인 인센스로 하루 두 번씩 총 20분. 가격은 비싸지 않고, 아무도 몰라주는 물건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누군가에게 쉽게 말하지도, 말할 수도 없는 내 속 깊은 곳에 대한 위로와 응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어떤 비싸고 유명한 물건보다 가치 있는 것 아닐까요?


오늘 여러분의 하루도 GOOD MOOD이길 바랍니다.


언비트 에디터 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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