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찾지 않는 자
마흔이 되었다. 아니 이제 마흔을 훌쩍 넘겼다. 다른 업종에 있다가 다시 국내 개발 NGO로 돌아가려고 하니 나이가 걸렸다. 그래서 일단 해외 파견직을 알아보았다. 뭐 모르는 사람들은 해외파견이라고 하면 파견수당이 굉장히 있을 줄 오해하는데 처우는 그다지 좋지는 않다. 이유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국내 NGO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한 점도 있고, 파견되는 국가가 선진국이 아니다 보니 현지의 싼 물가를 반영한 탓일 것이다. 그런데 현지인이 아닌 이상 그 싼 물가를 제대로 누리기는 쉽지가 않다. 여하튼, 해외 파견직은 보통 1년 단위의 계약직이 업계의 관행처럼 되어 있어서 1년만 있다가 복귀했다. 파견 계약기간을 1년으로 하는 이유를 첨언하자면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봉사단원들의 파견 비율이 PM이나 AM에 비해 앞도적으로 많으니 봉사단원의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엄청난 포부를 안고 도착하지만 현지에 적응해서 생활하는 문제는 현실이기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적응하는 문제라고 표현했는데 좀 더 적나라하게는 비상식적인 지부장, PM과 큰 갈등이 있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단원들 간의 불화 등 한국인 사이의 인간적인 갈등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NGO들이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단원들도 그렇고 PM도 1년의 단기 계약을 맺고 파견 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일이 전문성을 요한다기 보다는 한달 안에 업무를 파악하고 진행 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업무가 많아서 NGO입장에서는 인력을 장기로 파견하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현장에 가보면 아동결연 업무는 여러 해 동안 안정되어 잘 돌아가고 있던 중이고(꼭 그런 것은 아니고 어찌어찌) 추가적으로 한국에서 요청하는 업무들 중 그렇게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업무는 거의 없다고 보면된다. 그리고 결국 모든 프로젝트의 카테고리는 농업, 의료, 식수, 교육 정도의 영역에서 한정되어 움직여서 창조적, 능동적인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혹여 그런 프로젝트가 있다면 전문가 그룹 혹은 기업체를 넣어서 진행시키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대형 개발 NGO는 그 역량 마저도 내부로 흡수하여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어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실패의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이건 그동안 개발 NGO에서 아동결연 말고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일이 거의 없는 것이 그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그렇게 해외파견을 끝내고 국내에 원서를 넣어 봤지만 면접을 보지는 못했다. 아마 나이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이건 비단 NGO뿐 이니라 일반 기업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텐데, 채용공고를 내면 40대가 지원을 꽤 한다는 말을 누군가로 부터 얼핏 들었던 것 같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성별이나 연령차별에 차별을 두면 안돼서 연령에 제한을 걸어놓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해당 업무에 40대가 들어올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지원을 하는 '나'같은 40대가 있는 현실이다. 만약 그나마 취업이 가능한 곳이 있다면 정말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채용공고가 몇 달씩 걸려있는 소규모 NGO에 취업이 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신다면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랬었더라고, 경험담을 쓰고 있노라고 답하고 싶다.
뒤를 돌아봤을 때도 예전에 만났던 개발 NGO의 사람들 중에 40대를 본 기억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30대 중반의 간사들은 거의 그 바닥에서 해외파견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출장을 다니며 훈장처럼 여권에 여러 국가의 Visa 스티커가 붙어있고, 또 개발도상국의 출입국 스탬프가 무수히 찍혀있는 레전드급 간사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40대는 거의 팀장급을 넘어서 부장급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특히 여성 팀장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마 남자 간사들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일찍이 그만두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본다. 애초에 비영리단체 입사자 중 여성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어느 단체의 임원들 중 여성의 비율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실무진과 임원진 사이에는 여성에게 넘어설 수 없는 극명한 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 꼭 NGO에서만 40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사기업에서도 40대는 서서히 퇴직의 대상이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외 경험도 많으며 열정 페이에 굴하지 않고 야근을 마다하지 않던 그 많은 간사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NGO의 급여 수준이 낮음으로 인해 인력 순환이 빠른 편이라 사람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일반기업도 그렇겠지만 사람에 대한 교육이나 투자를 아끼지 않고 하는 기업이 어디 흔하겠냐마는 이쪽 분야는 유난히 간사들을 정말 쉽게 교체 가능한 소모품처럼 대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업계에 대한 비전을 개인이 알아서 찾아가는 거라고 말한다면 딱히 크게 반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단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경력을 쌓은 인재들을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국제개발대학원을 거쳐 국제기구로의 진출하는 일종의 로드맵을 개발 NGO와 외교부가 제시해 준다면, 점차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고 그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제 기구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내에 개발 NGO가 그렇게 많은데 국내에 괜찮은 국제개발 대학이나 대학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해외 유학까지 생각해야 되고, 그 부담이 더 깊이있는 개발학 공부를 포기하게 만드는 하나의 큰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로 40대 이후의 NGO에 몸담는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자만 낮은 급여, NGO가 인력을 바라보는 시각, 보이지 않는 비전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NGO에서 마흔 이후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NGO를 다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경험해 본 바로는 최대 30대 중반 이후의 삶은 다른 분야로 변경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0대 초반까지는 젊은 날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업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후로의 삶은 조금 무리이지 않을까?라고 비영리단체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을 드려본다.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로 봐서,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 무게를 두는 삶을 살고 싶다면 사회적기업이나 스타트업을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