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나왔습니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지만, 놀랍게도 나는 스물넷이 될 때까지 공항 근처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없었다. 군대에서 매일 밤 적었던 '수양록'에는 제대 후 비행기 한 번 타보는 것이 소원으로 적혀 있을 정도였으니, 사실 촌스럽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나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스물넷의 늦은 나이에 두 번째 대학에 신입학을 했다. 전공을 바꾼다는 게 그만 학교도 바꾸어 버렸다. 모든 면에서 선택은 탁월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 연수가 학과에 개설이 되면서 나는 어떠한 조건도 고려하지 않고 신청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출국은 17시간의 배편을 이용해 부산에서 오사카항으로 가는 일본행이 되었다. 모든 것이 신기했고 새로웠지만 전혀 낯설어하지 않고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렸다.
그 해 겨울 말레이시아 연수, 그다음 해에 다시 일본 연수. 해외 연수의 첫 단추를 꿰고 나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출국이 잦아지고 쉬워졌다. 그리고 내 인생을 바꿀 만큼 큰 획을 그었던 여름에 떠난 필리핀 행. 답답하고 꽉 막혀 있었던 나의 국내 생활의 혈을 뚫어준 두 번째 대학을 뒤로하고(자퇴), 나는 필리핀에 세 번째 대학에 등록하여 그곳에서 9년간의 삶을 살아냈다.
지금 돌아보면 무슨 정신으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했는지도 모른 채 무언가에 홀린 듯 시간을 보내며 살아갔다. 20대 중후반, 그리고 30대의 초중반을 보내는 시간 동안 내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혼자 살아가는 삶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가정이 생겼고, 9년의 필리핀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우리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며 많이 달라진 문화에 발맞춰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다섯 해가 지나고 여섯 번째 해가 찾아왔을 때, 느닷없이 우리는 태국이라는 나라에 살게 되었다. 사정상 아내보다 내가 먼저 입국해서 두어 달 홀로 살게 되었지만, 어쨌든 지금부터는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기약 없는 태국 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
앞으로 하나씩 풀어갈 타국 살이의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적어내고자 한다. 솔직하게. 덧 붙이거나 덜어내지 않고 담백한 삶의 이야기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