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맞잡은 손으로 걸어본, 기억의 발자취
나의 첫 신혼집은 서울 외곽, 어느 조용한 골목 안쪽의 빌라 전세방이었다.
그 후 몇 차례 이사를 거쳐 결혼한 지 7년여 만에 지금의 집을 마련했을 때, 한 친척 어르신이 나를 보며 "X 두 쪽만 달고 올라온 놈이 출세했네!"라고 껄껄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 마흔 줄에 들어선 지금의 내가 돌아보아도, 그 시절의 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시골 출신인 데다 노후한 아파트 생활도 경험했던 나에게 빌라 생활은 그리 낯설지 않았지만, 도시의 반듯한 아파트가 당연했던 아내에게 그 시간은 꽤나 고단했을 것이다
.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아내는 쥐뿔도 없는 나를 참 많이도 사랑해주었나 보다.
단열이 잘 되지 않아 겨울이면 벽면에 끊임없이 피어나던 검은곰팡이. 해가 조금만 저물어도 금세 어스름이 내려앉던 적막한 골목길. 아내는 그 모든 것들을 참 싫어했다.
그럼에도 나에게 크게 불만을 내색하지 않는 아내가 늘 고마웠다. 그래서 추운 날씨에도 창문을 활짝 열고 독한 약품으로 곰팡이를 닦아냈고, 아내의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는 날이면 어두운 골목이 걱정되어 큰길까지 마중을 나가곤 했다.
춥고, 어둡고, 때로는 불편했던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우리는 풋풋하고 알콩달콩한 신혼의 온기로 그 모든 결핍을 기꺼이 이겨냈었다.
지난 주말, 아이들을 신혼집 동네 인근 과학체험관에 잠시 맡겨두고 아내와 카페에 앉았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다, 문득 아내의 제안으로 그 시절의 동네를 다시 찾았다. 그 주변 동네에서 계속 살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었건만, 이사를 나온 이후로 처음 간 것이었다.
즉흥적인 발걸음으로 들어선 동네는 세월의 흔적
을 입어 리모델링된 건물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그때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여전히 휘어진 채 달려 있는 우리의 첫 신혼집 방범창살을 마주했다.
이상하게도 고생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설레고 풋풋했던 감정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여긴 그대로네." "저긴 변했네."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장 골목까지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아이들을 데리러 돌아왔다.
그때는 힘들고 어렵고 싫기만 했던 순간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조각이 오늘의 나와 우리 가정을 있게 한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 있었다.
기억의 왜곡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집 앞에 서 있는 동안 잠시나마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아마 내 곁에서 따뜻하게 손을 맞잡아준 아내의 온기가 여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없고 북적거리는 오늘도 언젠가는 이처럼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내일의 나를 살게 할 자양분이 될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해 지쳐 있던 오늘의 나를, 낡은 방범창 너머의 기억으로 다시 한번 가만히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