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졸업장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니...

by 아저씨의 뒷주머니

지난 토요일, 드디어 대학원 학위복을 입었다.


사실상 학교생활은 작년 12월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되었지만, 막상 졸업식에 참석해 학사모를 써보니 비로소 진짜 모든 과정이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밀려오는 후련함과 묘한 아쉬움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돌이켜보면 참 운이 좋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교육 프로그램에 선발되었고, 수많은 학교 중에서도 학교의 명성과 '금융업'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접해보고자 K대학의 금융 관련 MBA 과정을 선택했다.

평생 금융과는 1도 관계가 없을 것 같던 나에게 이 선택은 꽤 신선한 도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했던 첫 OT. 그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훗날 졸업 프로젝트까지 함께 피와 땀을 흘린 든든한 동기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되었다.

하지만 낭만은 짧았다.

학기 시작 전 사전 교육에서 아주 오랜만에 통계학과 프로그래밍을 마주했을 때의 그 아찔했던 멘붕은 지금도 생생하다. 굳어버린 머리를 원망하며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었다.


1학년의 봄과 여름 학기는 그야말로 생존 게임이었다.

회사 업무를 쳐내고, 늦은 밤 과제와 씨름하고, 두 아들의 육아까지 병행하느라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다행히 가을 학기에 접어들며 학생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져갔고, 겨울 학기엔 달콤한 '자체 방학'을 가지며 무사히 첫 해를 버텨냈다.


2학년의 전공 심화 과정은 또 한 번의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시간표를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짤 수 있게 되면서, 주말의 일상을 조금씩 되찾아가며 학업을 이어갔다.

특히 2년 과정의 하이라이트였던 영국 해외연수와, 그 일정에 개인 휴가를 붙여 홀로 떠났던 포르투갈 여행은 내 인생에 오래도록 남을 명장면이 되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오롯이 나 혼자만의 배낭을 메고 떠났던 그 자유롭고 낯선 시간들. 학업과 육아의 고단함을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가을, 본격적인 졸업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동기들과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협업한 끝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빠르게 진화하는 AI와 금융산업이 어떻게 시너지를 만들어내는지, 책이 아닌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학생이 되어 공부를 해보니 뼈저리게 느끼는 바가 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진리였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머리가 조금이라도 더 팽팽하게 돌아갈 때 열심히 해둘 걸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하지만 동시에,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끝내 이 과정을 완주해 낸 나 자신을 먼저 힘껏 칭찬해주고 싶다. 참 부단히도 애썼다.

무엇보다 이 졸업장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은 아내의 몫이다.

남편의 늦깎이 학구열을 묵묵히 지지해주고, 주말마다 이어지는 독박 육아의 고단함을 군말 없이 감내해 준 아내가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여정이다.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쑥쑥 자라고 있는 우리 두 아들.

아빠가 주말마다 책상에 앉아 골머리를 앓고, 때로는 피곤한 얼굴로 치열하게 노력했던 그 뒷모습을 보며 삶의 태도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느끼는 바가 있었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이제 무거웠던 전공 서적을 내려놓고, 다음 레이스를 향해 다시 뛴다.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뿐만 아니라, 끝까지 해냈다는 이 묵직한 성취감을 뒷주머니에 단단히 챙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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