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니...
지난 토요일, 드디어 대학원 학위복을 입었다.
사실상 학교생활은 작년 12월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되었지만, 막상 졸업식에 참석해 학사모를 써보니 비로소 진짜 모든 과정이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밀려오는 후련함과 묘한 아쉬움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돌이켜보면 참 운이 좋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교육 프로그램에 선발되었고, 수많은 학교 중에서도 학교의 명성과 '금융업'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접해보고자 K대학의 금융 관련 MBA 과정을 선택했다.
평생 금융과는 1도 관계가 없을 것 같던 나에게 이 선택은 꽤 신선한 도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했던 첫 OT. 그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훗날 졸업 프로젝트까지 함께 피와 땀을 흘린 든든한 동기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되었다.
하지만 낭만은 짧았다.
학기 시작 전 사전 교육에서 아주 오랜만에 통계학과 프로그래밍을 마주했을 때의 그 아찔했던 멘붕은 지금도 생생하다. 굳어버린 머리를 원망하며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었다.
1학년의 봄과 여름 학기는 그야말로 생존 게임이었다.
회사 업무를 쳐내고, 늦은 밤 과제와 씨름하고, 두 아들의 육아까지 병행하느라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다행히 가을 학기에 접어들며 학생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져갔고, 겨울 학기엔 달콤한 '자체 방학'을 가지며 무사히 첫 해를 버텨냈다.
2학년의 전공 심화 과정은 또 한 번의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시간표를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짤 수 있게 되면서, 주말의 일상을 조금씩 되찾아가며 학업을 이어갔다.
특히 2년 과정의 하이라이트였던 영국 해외연수와, 그 일정에 개인 휴가를 붙여 홀로 떠났던 포르투갈 여행은 내 인생에 오래도록 남을 명장면이 되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오롯이 나 혼자만의 배낭을 메고 떠났던 그 자유롭고 낯선 시간들. 학업과 육아의 고단함을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가을, 본격적인 졸업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동기들과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협업한 끝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빠르게 진화하는 AI와 금융산업이 어떻게 시너지를 만들어내는지, 책이 아닌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학생이 되어 공부를 해보니 뼈저리게 느끼는 바가 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진리였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머리가 조금이라도 더 팽팽하게 돌아갈 때 열심히 해둘 걸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하지만 동시에,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끝내 이 과정을 완주해 낸 나 자신을 먼저 힘껏 칭찬해주고 싶다. 참 부단히도 애썼다.
무엇보다 이 졸업장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은 아내의 몫이다.
남편의 늦깎이 학구열을 묵묵히 지지해주고, 주말마다 이어지는 독박 육아의 고단함을 군말 없이 감내해 준 아내가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여정이다.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쑥쑥 자라고 있는 우리 두 아들.
아빠가 주말마다 책상에 앉아 골머리를 앓고, 때로는 피곤한 얼굴로 치열하게 노력했던 그 뒷모습을 보며 삶의 태도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느끼는 바가 있었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이제 무거웠던 전공 서적을 내려놓고, 다음 레이스를 향해 다시 뛴다.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뿐만 아니라, 끝까지 해냈다는 이 묵직한 성취감을 뒷주머니에 단단히 챙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