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저 오디오 시스템의 성능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해상도를 테스트하기 위해 섬세한 연주가 담긴 장르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즈(Jazz)'에 손이 가더군요.
제 방의 스피커입니다.
매달 배달 오는 잡지 『MMJazz』를 뒤적이며 공부를 시작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전히 어렵습니다. 어떤 컨템포러리 재즈는 "음악인가, 소음인가?" 싶어 미간이 찌푸려지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아직 '재즈 매니아'가 되기엔 먼, 그저 좋은 소리를 사랑하는 초심자일 뿐입니다.
그는 복잡하고 모호한 화성으로 청자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대신,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을 연상케 하는 명료하고 투명한 타건으로 멜로디를 또렷하게 전달합니다. (사실 래리 풀러는 재즈 피아노의 전설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의 스타일을 가장 잘 계승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디오 파일(Audiophile)의 입장에서 그의 피아노 톤은 축복과도 같습니다. 뭉개짐 없이 알알이 맺히는 피아노 소리는 좋은 스피커를 만났을 때 비로소 그 영롱한 진가를 발휘합니다. 앨범 제목처럼 '가볍게 걷는 듯(Easy Walker)' 경쾌한 그의 스윙감은 BGM처럼 편안하면서도, 집중해서 들으면 빈틈없이 꽉 찬 밀도를 자랑합니다.
2. 스피커를 간지럽히는 '브러시'의 마법
래리 풀러가 멜로디의 뼈대를 세운다면, 그 공간을 공기로 채우는 것은 드러머 제프 해밀턴(Jeff Hamilton)입니다.
Jeff Hamilton / 출처 : Wikipedia Commons
이 앨범을 오디오로 들을 때의 가장 큰 쾌감은 바로 '브러시(Brush)' 사운드입니다. 제프 해밀턴은 나무 스틱 대신 철사로 된 브러시를 사용해 앨범 곳곳에서 드럼의 표면을 문지르고 어루만집니다.
Drum Brush / 출처 : https://hub.yamaha.com
특히 'Compassion' 같은 곡에서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그 "사각사각"하는 질감은 마치 ASMR처럼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합니다. 좋은 오디오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 이 미세한 질감이 증명해 줍니다.
래리 풀러가 속도감 있게 피아노 런(Run)을 시작하면,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던 드럼과 베이스가 치고 나옵니다. 특히 드럼 솔로 파트에서는 저도 모르게 "와..." 하는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시끄럽게 때려 부수는 솔로가 아닙니다. 마치 피아노와 대화를 나누듯 멜로디컬하게 리듬을 쪼개는 제프 해밀턴의 기술과, 그걸 여유롭게 받아주는 래리 풀러의 호흡은 '트리오 연주'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4. 마치며 : 좋은 소리는 결국 좋은 음악이 된다
오디오 뽕(?)에 취해 시작한 재즈였지만, 이제는 압니다.
좋은 스피커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소리를 크게 듣기 위함이 아니라, 연주자가 악기 하나하나에 실어 보낸 그 섬세한 '합(合)'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을요.
어려운 재즈 이론은 몰라도 괜찮습니다.
래리 풀러의 투명한 피아노와 그 뒤를 따르는 브러시 소리에 귀를 맡겨보세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거실은 최고의 재즈 클럽이 될 테니까요.
(물론 이어폰으로 들어도 좋습니다.)
<추가 한문단> 전설의 베이시스트를 기억하며
이 앨범이 유독 안정감 있게 들리는 비밀은 베이스에 있습니다. 바로 재즈 베이스의 거장 레이 브라운(Ray Brown)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 이 앨범은 레이 브라운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말년의 명연 중 하나입니다.
- 래리 풀러와 제프 해밀턴은 레이 브라운 트리오의 마지막 멤버들이기도 했죠. 세 사람의 호흡이 유독 끈끈하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 함께 들으면 좋은 앨범: 레이 브라운 트리오의 <Soular Energy> (피아노와 베이스의 오디오적 쾌감을 극한으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명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