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호소력 짙은 노래 '오르막길'을 들으며 감상에 젖어 있을 때였습니다. 다음 곡으로 자동 재생된 낯선 노래 하나가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제목은 <연애인>. (Spotify에서는 Can't wait for love인데 영어 제목인 듯하네요.)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도입부부터 치고 들어오는 세련된 비트와 그 위를 쫀득하게 타는 허스키한 여자 보컬의 리듬감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와, 이 보컬 누구지? 톤이랑 그루브가 미쳤는데?"
황급히 스마트폰 화면을 켠 저는 잠시 멍해졌습니다. 앨범 커버 속의 주인공은 너무나 익숙한 얼굴, 박화요비였으니까요.
1. '4차원 캐릭터' 뒤에 가려졌던 진짜 목소리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에게 박화요비는 가수보다 '예능인'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엉뚱한 말투와 4차원적인 행동들. 그저 '노래 좀 하는 히트곡 몇 개 있는 가수' 정도로만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 곡을 듣는 순간, 그 모든 선입견이 와장창 깨졌습니다. 우리가 예능을 보고 웃는 동안, 그녀는 스튜디오에서 이렇게나 치열하게 소리를 깎고 다듬으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녀의 엉뚱함은 어쩌면 음악이라는 깊은 우물에 빠져 사는 아티스트 특유의 순수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 발라드가 아닌, 진짜 R&B의 맛 박화요비 하면 으레 애절한 발라드 <어떤가요>나 <그런 일은>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8집 수록곡 <연애인>에서 그녀는 전혀 다른 무기를 꺼내 듭니다. 터질 듯 내지르는 고음 대신, 그녀는 리듬을 갖고 놉니다. 특유의 공기 섞인 허스키 보이스는 비트 사이사이를 매끄럽게 유영합니다.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차원을 넘어, 목소리 자체를 하나의 악기처럼 다루는 탁월한 '리듬감'입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그루브를 소화할 수 있는 여성 보컬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것은 연습으로 만들어진 기술이라기보다, 타고난 '감각'의 영역처럼 느껴집니다.
3. 그녀가 다시 무대에 서는 날을 기다리며 이 앨범을 계기로 박화요비의 다른 곡들을 다시 찾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과소평가된 가수가 아니라, 우리의 편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가수였다는 것을요.
최근 그녀의 활동이 멈춘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제야 그녀의 진가를 알아본 리스너로서, 예능 스튜디오가 아닌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쥔 그녀의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저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편견 없이 온전히 그녀의 음악에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추가 한문단> : 여러분의 서랍 속 명곡은 무엇인가요? 음악적 취향은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섬세한 영역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노래가 다른 이에게는 평범한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죠. 그래서 우리는 늘 나만의 결에 딱 맞는 '인생곡'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릅니다.
알고리즘이 저에게 박화요비의 재발견이라는 선물을 주었듯, 여러분에게도 남들에겐 말하지 않고 혼자만 아껴두고 싶은, 혹은 다시 활동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나만의 명곡'이 있나요? 여러분의 소중한 보관함 속에 잠들어 있는 그 노래가 궁금해집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명곡을 나눠주세요. 저도 정성껏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