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음악 (3/4)

잃어버린 여름을 찾아주는 피아노, 히사이시 조

by 에디터 엉클신

지난 글에우리는 존 윌리엄스의 나팔 소리를 들으며 우주로 모험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 기억 속 가장 투명했던 계절로 돌아가 보려 합니다.

피아노 건반 하나가 눌리는 순간, 매미 소리가 들리고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마법.
어른이 된 우리에게 '순수'라는 감각을 되살려주는 마에스트로, 히사이시 조(Hisaishi Joe)입니다.

1. 그 여름, 소년은 달리고 우리는 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의식처럼 다시 꺼내 보는 영화가 있나요?

제게는 3~4년마다, 여름이 오면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기쿠지로의 여름>입니다.

엄마를 찾아 떠나는 철없는 아저씨와 걱정 많은 소년의 여행. 사실 덤덤한 로드무비인데, 이상하게 소년이 다다다다 달리는 장면에서 'Summer'라는 테마곡이 흐르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통통 튀는 피아노 스타카토는 명랑한데, 듣는 우리는 묘하게 눈물이 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의 여름방학'이 그 선율 속에 박제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슬퍼서 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맑아서 울게 만듭니다.

2.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혼을 그리다
히사이시 조를 이야기할 때 '스튜디오 지브리'를 뺄 수 없겠죠.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림으로 세계를 창조했다면, 히사이시 조는 음악으로 그 세계에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테마곡 '너를 태우고(君を乗せて)'를 들어보세요. 구름 위를 부유하는 듯한 그 멜로디는 멸망한 고대 문명의 쓸쓸함과 소년 소녀의 희망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는 또 어떤가요? 3박자의 왈츠 리듬에 맞춰 하울과 소피가 공중을 걸을 때, 우리는 음악만으로도 사랑에 빠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는 거창한 설명 대신, 멜로디 하나로 판타지를 현실로 설득해냅니다.

3. 웰컴 투 동막골, 국경 없는 울림
제가 아니 많은 한국 팬들이 놀랐던 순간이 있습니다.
"아니, 이 영화 음악도 히사이시 조가 했다고?"
바로 한국 영화 <웰컴 투 동막골>입니다.

강원도 산골 마을, 팝콘이 눈처럼 내리던 그 명장면을 기억하시나요? 그때 흐르던 몽환적인 왈츠풍의 음악 'A Waltz Of Sleigh'가 바로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조차 동화 같은 판타지로 바꿔놓았습니다. 언어와 국경이 달라도, '순수함'을 다루는 그의 감각은 만국 공통어임을 증명한 순간이었죠.

4. 미니멀리즘, 단순함의 미학
히사이시 조 역시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자유자재로 다룹니다. 하지만 앞선 두 거장과 조금 다른 점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입니다.

그는 복잡한 기교를 부리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피아노 선율(멜로디)을 먼저 던져놓고, 그 위에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겹겹이 쌓아 올립니다.
단순하기에 더 깊이 박히고, 웅장하기에 더 긴 여운을 남깁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의 음악을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5. 마치며 : 어른들을 위한 자장가
사는 게 바빠 하늘 한 번 쳐다보기 힘든 날이 있습니다. 마음이 건조해서 바스락거릴 때, 저는 처방전처럼 히사이시 조의 앨범을 엽니다.
그의 음악은 지친 어른들에게 건네는 '자장가' 같습니다.

"괜찮아, 네 안에는 여전히 그 여름의 소년(소녀)이 살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하죠.

자, 이제 엔니오 모리꼬네의 눈물, 존 윌리엄스의 모험, 히사이시 조의 동심까지 모두 만났습니다.
다음 주 마지막 편에서는, 이 위대한 거장들이 남긴 유산과 "왜 영화에는 음악이 필요한가"에 대한 종합적인 이야기로 대장정의 막을 내리겠습니다.

<추가 한문단>
"음악은 기억의 앨범을 넘기는 바람과 같다."

오늘 소개한 <기쿠지로의 여름> 속 'Summer'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를 들으며, 잠시나마 당신만의 '천공의 성'으로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