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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산코끼리 May 15. 2016

Must do, have, eat

취향을 저격당한 초보 여행자의 후회

여행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다른 사람의 여행기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인기가 많은 글 위주로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또 멋진 사진을 담은 여행기는 사진만 넘겨보더라도 순식간에 몇 편을 보게 될 만큼 재미가 있었다.(부러웠다.)


몇 편이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다가 문득... 참 비슷한 형태의 여행기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욱이 한 장소를 중심으로 여행기를 검색해서 읽다 보면 대부분 같은(혹은 거의 비슷한) 사진이 남아 있고 같은 음식과 심지어 같은 물건을 사기도 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무감에 마신 녹차라떼 @교토, 일본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관광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광지마다 특화된 장소나 건물이 있고 상품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 지방의 구석구석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잘 알면 갈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가장 유명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꼭 사고 싶은 물건 또한 비슷할 것이다.


따라서 여행자에게는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자처럼 이건 꼭 해야 하고 꼭 가야 하는 일과 장소가 존재하며 꼭 사야 하는 물건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여행 커뮤니티가 일련의 리스트업을 담당한다.) 그래서 나도 교토에 방문했을 때 요지야 카페에 '굳이' 갔었던 기억이 있다. 교토에 대한 정보를 모으던 중에 많은 사람이 그곳의 사진을 업로드한 게시판 글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품으로 유명한 요지야가 윤영하는 카페는 교토의 꽤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교토까지 찾아가서 스타벅스에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요지야 카페의 녹차라테를 주문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정말 열심히 찍었던 크리스마스 트리 @비에이, 일본


홋카이도는 겨울을 만끽하기 참 좋은 여행지라고 한다. (물론 여름이 더운 일본에서는 여름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작년 연말에 방문했던 홋카이도는 과연 겨울왕국이었다. 특히 비에이에서 보았던 풍경들은 평생 잊지 못할만한 일이었다. 넓은 들판에 서 있는 나무는 바닥에 1m씩 쌓인 눈 덕분에 더욱 특별해 보였다. 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포함한 여러 스폿에서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때까지 비에이 여행을 준비하며 미리 보았던 사진들을 떠올리며 더 멋지게 한 컷 남겨보고 싶었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다. 날씨가 너무 흐린 탓이었다.


혹시 우리는 1등 여행자가 되려고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와 경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행 게시판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글이 있는데 바로 쇼핑 정보이다. "동전파스가 지금 도쿄역 몇 번 출구 옆 약국에서 하나에 얼마네요!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싸요!" 만약 일본에 방문하려고 여행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은가? 대부분의 일본 초행자들은 "'동전파스'는 일본 여행자가 사야 하는 물건이며, 어떻게든 싸게 구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나는 그런 물건들을 싸게 파는 가게를 찾아 밤거리를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당신은 예외인가?


우리는 손해 보는 것을 참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물론 여행도 마찬가지다. '세계 3대 야경중 하나'라든지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해변 중 하나'라는 이름이 붙은 장소들은 그 여행지를 방문한 사람으로 하여금 꼭 가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마치 그 장소를 보지 않고 돌아온다거나, 그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다면 뭔가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 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워가며 여행이 아닌 리스트를 클리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추위 속에 우연히 발견한 핫초코 가게 @삿포로, 일본


여행 준비를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왜 여행을 결심했는지에 대해 각자가 가진 이유가 아닐까 한다.


개인의 취향이 참 불분명한 요즘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너무 많은 정보 탓이라고 누군가는 가만히 있는 인터넷을 탓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중심을 잘 잡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앞서 예로 들었던 '리스트 클리어형'의 여행은 분명히 우리의 취향을 저격하기 보다는 오히려 취향의 존재 자체를 잊게 만든다. 때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지방에서 가장 맛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 음식이 아니라 내 입에 맞는 커피 한 잔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여행을 결심하는가? 그리고 그때 가진 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그리고 불필요한 리스트를 여행 계획에서 삭제해보자. 한결 가볍고 색깔 있는 여행이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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