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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hie 다영 Lee May 15. 2016

하늘과 땅이 닿는 곳, 그 곳에서 우리는 모두 만난다.

2014년의 마지막과 2015년의 처음을 비행기 안에서 보냈다. 시카고에서 이스탄불, 이스탄불에서 최종 목적지였던 델리까지 장 30시간에 걸친 비행에 시간이 몇시인지, 오늘이 몇일인지 가늠을 못하면서도, 새롭게 맞이하는 새해의 설레임과, 첫 여행의 긴장 속에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염없이 창 밖만 바라보았다. 

인도 뉴델리 공항에 도착한 건 아직은 깜깜한 새벽. 항상 꿈만 꿔왔지 아직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내 머리 속에 존재하던 인도의 첫 모습은 아직은 어둠 속에 자리한채로 새벽 안개와 비에 촉촉히 젖은채로 보이는 불빛들을 은은하게 퍼트리고 있었다. 

입국장에서 나와 택시를 타려고 나오니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고, 소량이었지만 바닥에 꽃잎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비와 습기가 뒤섞여 눅눅한 그 냄새와 인도 특유의 그 향을 헤치고 꽃향기가 훅 올라왔다. 택시 아저씨는 정말 빠르고 무섭게 운전하셨고, 아직은 몽롱한 상태로 인도의 새벽길을 달리며 그제서야, '아, 인도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델리에서 시작해서 카주라호를 거쳐 바라나시까지 총 20일을 머물렀다. 

어쩌면 인도에서 가장 영적인 도시 세 곳을 둘러본 셈이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자랐고, 왔다갔다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낸 한국과 미국 모두 기독교문화가 강한 나라들이었어서, 힌두교와 그 문화가 지배적인 인도에서의 삶은 나에게 꽤나 낯선 경험이었다. 종교의 여부를 떠나서, 인도에 오게되면 다들 꼭 한번쯤은 삶과 죽음, 신성과 같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하면서도 추상적인 탓에 자주 생각하지 않는 주제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마치 인도라는 나라가 나에게 그랬듯 말이다. 항상 존재하는 줄도 알고, 그것이 꽤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동떨어져있다고 느껴지기에, 혹은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깊이 생각하지도, 살아내지도 못한.. 그런 무언가 말이다. 인도에서의 시간은 어쩌면 삶과 죽음이 내가 단순하게 생각해왔던만큼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나에게 보여주었고, 동시에 자연스럽게 신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좀 더 큰 그림을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이듯, 인도는 그 누구든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일상에 쫓겨 차마 의식하지 못하는, 그 큰 부분을 바라보게 해준다.



카주라호에서 머물 때였다. 델리에서 카주라호로 넘어갔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서쪽사원이 입장을 마감하기 몇십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첫 날은 그냥 크게 한바퀴를 둘러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날의 석양과, 져가는 붉은 햇빛이 정교한 사원의 틈 사이사이로 스미는 그 광경이 정말 마법과도 같은 순간처럼 느껴져 그 후 카주라호에서 머문 나흘간 매일매일 수시로 사원을 들를 수 있으면 들렀던 것 같다. 서쪽사원의 아름다움은 일출때와 일몰때에 배가 되는데, 사원들의 입구가 동쪽으로 나있기 때문에 해가 돋기 전 새벽시간에 사원 안에서 가만히 숨 죽여 기다리고 있다보면 어둡던 사원 안쪽까지 서서히 비추는 햇빛의 움직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물의 크기에 비해 작은 입구와 드문드문 난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그 빛이 시시각각 변화하며 섬세한 돌의 조각들에 스며드는 그 모습을 보고있자면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아무도 없는 아직은 어두운 사원 안에서 나는 그렇게 매일아침 영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인도에는 아무런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물론 사회구조라던지, 카스트 제도, 복잡한 의식들 등등, 그 모든 외부적인 벽은 존재했지만, 외려 사람들은 더 자유해보였다. 그 강력한 구속이 그에 버금가는 해방을 낳는다는 장 그르니엘의 인도에 대한 묘사가 정말 완벽하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일상적인 부분부터 일, 예배까지, 이들의 삶은 하나의 큰 흐름처럼 이어져간다. 가장 상반되어 보이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들은 뚜렷하게 선을 긋고, '이건 삶, 저건 죽음'하며 구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삶의 방식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로 스며든다. 


그래서였는지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때 물씬 풍겨왔던 죽음의 냄새는 처음엔 나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바라나시에서는 항상 공기중에 매캐한 연기냄새가 돈다. 밤이 되면 더 짙어지는 그 향이 나중에서야 죽은 이를 태우는 냄새라는 것을 함께 인도를 다녔던 현지 교수님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렇게 항상 누군가의 죽음은 공기를 통해 우리와 함께 여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항상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죽음의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문득문득 교수님이 해주신 말이 생각날 때마다 바라나시의 한 길가에서, 혹은 강가 근처에서 멈춰서서 찬찬히 그 공기를 들이마시곤 했다. 내가 쉬는 이 숨이 그 누군가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괜히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이 도시는 생명으로 가득 찬 듯 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내딛는 발 한걸음 한걸음마다, 도는 모퉁이마다 그 이면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밤이면 골목마다 얇은 천 아래로 드러난 인체의 형상들이, 혹은 종종 길을 가다보면 마주치곤 하던 앙상하게 뼈가 드러나 늘어져있는 동물들의 모습들이, 나로 인하여 과연 죽은 것일까 아니면 잠을 자고 있는 걸일까 질문하게 만들었다. 나중엔 마치 낮잠이라도 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에 또 나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곤 했었다. 


순례자들이 최종 종착지로 자주 찾는다는 바라나시에서 우리도 우리들의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쭉 가로질렀다. 교수님은 이 곳 사람들은 이 강을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이라고 믿어서, 이 강에 디아를 띄우고 닿을 수 없는 사람, 혹은 망자에게 메세지를 보내면 그 메세지가 그에게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하셨고, 이내 우리는 침묵 속에서 각자의 할 말을 담아 디아를 띄워보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너머로 색색의 연들이 우리의 머리를 가로질러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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