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제주
여행
여행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왜인지 모르게 거창해야 할 것 같고 국내가 아닌 해외여행을 떠나야 무언가 그럴싸한걸 남기고 올듯한 착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돈과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우리에겐 여행이라고 하면 설렘과 동시에 걱정부터 앞선다. 그런 내가 이 욕심 아닌 욕심을 채워 보고픈 마음에 해외 같은 국내 여행을 가보면 어떨까 싶었다. 생각에서만 멈추지 않고 실행에 옮겨버리자는 추진력 강한 내 성격 덕에 지금까지 '제주'라는 곳에 매료되어 있는데, 이번 기회에 당신과 함께 나눠 보려고 한다.
재작년부터 제주에 작게 호텔을 운영하시는 친척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매년 제주로 주제를 갖고 떠난다. 힐링이면 힐링, 먹방이면 먹방, 모험이면 모험 다양도 하다. 엄마, 나, 여동생 우리 세 모녀가 뭉치면 어디든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직 생생히 기억 속에 남아있고, 당신에게도 추천해주고 픈, 당신이 가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들고픈 장소 몇 군데를 다른 계절 속에서 소개하려 한다. 이 짧은 글이 끝날 때쯤엔 당신 입가에는 미소가, 조금 더 욕심 부려 본다면 돌아오는 여름에 제주로 떠날 항공표를 예매하고 있을 당신을 기대해 본다.
"엄마 이번엔 제주도 어디로 가?!"
주말도 따로 없이 일하는 내가 물었다. 보통의 직장인들이 겪는 안타까움 중 하나이다. 휴가 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 눈치를 봐가며 겨우 얻은 휴가에 기뻐 날뛰며 이미 엄마와 동생이 짜 놓은 스케줄을 들여다보며 철없이 웃으며 물었다. 와따매.. 많이도 간다. 이걸 3박 4일 안에 다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살인 스케줄이었다. 쿨하디 쿨한 우리 엄마의 한마디
"이번 여행은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니까 옷 편하게 챙겨가."
내가 미리 캐리어에 담아둔 옷들은 여성 여성 원피스. 살랑살랑 죄다 치마뿐이었는데 인생 사진을 바라기엔 글렀구나 싶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제주 여행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준비하나 제대로 된 것 없이 마냥 설레기만 한 세 모녀의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8월의 하늘 날씨는 맑디 맑았다. 우리를 더욱이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날씨였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제주도로 여행을 갈 때에는 저가항공을 추천한다. 비행시간이 짧기 때문에 여행 경비도 줄일 겸 좌석은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 또한 설렌다. (넓은 자리가 필요하다면 추가 비용을 내고 비상구 쪽 좌석도 추천한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비행을 끝내고 도착한 제주.
제주의 냄새. 역시 공기부터 다르다. 서울에 탁 막힌 공기와 차원이 달랐다. 같은 한국땅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다. 내가 제주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맑은 바람. 맑은 냄새. 그냥 맑다. 어떻게 말로 더 표현할 수 가 없다. 제주에 며칠만 숨 쉬고 돌아다니다 서울로 올라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제주는 화산 폭발의 잔여물로 참 많은 자연 예술작 들을 탄생시켰다. 그중 하나인 외돌개와 그 근처 바다 풍경은 이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맑고 청량함 그 자체이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포토샵을 배워 사진 편집 능력을 월등히 갖춘 것도 아닌 내가 그냥 일명 폰카로 찍은 풍경들이다. 한마디로 폰카가 외돌개 빨 받은 셈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바다 속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외돌개의 외롭지만 아름다운 풍경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보는 각도마다 제각각인 외돌개의 모습을 꼭 감상하길 바란다. 오른쪽 귓가로는 바람 소리가 살랑이고 왼쪽 귓가에는 가족들과 여행을 온 아이들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더해지고 눈으로는 마치 삼단 푸르른 칵테일을 마시는 듯하다. 외돌개 뿐 아니라 주변의 바닷물에 흠뻑 취하고 싶은 제주의 오전이었다.
제주의 일정을 어느 정도 다 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 즈음 이곳으로 발길을 돌려 보라 하고 싶다.
넋을 놓고 바라만 보아도 힐링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장관이다. 세상에 이런 구름과 하늘의 조화는 처음이었다. 일정이 힘들면 힘들 수 록 이곳에 와서 잠시 쉬어 가라 하고 싶다. 여름인지라 바닷물도 미지근히 수영하기에도 적합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바다 근처에서 맨발로 뛰놀며 스노쿨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엄마도 동생도 여기가 어떻게 한국이냐며 여기서 그냥 살고 싶다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음까지 여유로워지는 그래서 내 주변 것들도 전부 다 평화로워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더해졌다.
여기서 꿀팁 하나를 공개하자면 해변가 근처에 돌 식탁에 앉아 한 입하는 빙수를 챙겨 먹는 것이다. (위치는 해변가 근처에 세숫대야 빙수를 찾아보면 된다) 눈이 즐거웠다면 배 또한 즐거워야 하지 않은가? 1 만원정도 투자해서 여자 셋이서도 먹고 남을 세숫대야 빙수를 만나보길 바란다. 눈으로 하늘을 만끽하고 더위를 까지 날려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해외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곳으로 눈길을 머물러 보라 하고 싶다. 시원히 깨끗한 물이 보이는가? 튜브에 몸을 얹어 놓고 바다를 동동 떠다니면 물고기들이 파드닥하며 튀어 올라오는 생생한 장면도 직접 목격할 수 있고 얕은 물가에 발을 담가보면 바닷물이 너무나 투명해 내 발이 보인다. 서해에서는 결코 볼 수 없던 에메랄드빛 바다의 색깔이었다.
함덕 해수욕장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로 만족스럽지 못했다면 성산일출봉으로 가는 해변도로를 보면 오른쪽으로 잔디가 쫙 깔려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근처에 차를 세워내려 저 멀리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노려 보는 것도 추천한다.
우도 중에서도 검멀레 해수욕장 근처의 보트체험을 강력하게 권한다. 평소에 무서운 놀이기구가 식상했거나 바다에 지금이라도 당장 빠져들 것 같은,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스릴을 느끼고 싶다면 더더욱 권한다. 1만 원이 아깝지 않을 일이다. (20분 정도 소요) 또한 우도팔경 중 동안경굴(東岸鯨窟)이라 하여 제7경에 속하는 곳으로 검멀레 동굴이 있는데 현무암이 부서져 해안의 모래가 검은색이라는 제주말 ‘검 몰레(검은 모래)’에서 유래한 이곳을 코앞에서 직접 보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다. 다만 밀물 때는 입구를 찾을 수 없고 썰물 때 물이 빠지고 난 후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보트를 타고 동굴로 들어갔을 때 현지 가이드 분께서 직접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도 해주시는데, 나는 동굴 안의 나를 집어삼킬 듯한 위엄에 눌려 멍하니 동굴 감상만 해댔다.
보트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면 목과 몸이 다소 아플 수 있다. 몸이 붕 뜰 정도로 파도를 역행에서 돌아오기 때문에 소리는 소리대로 질러대고, 긴장한 탓에 온몸이 아프다. 유념하길 바란다.
이번 제주 겨울 여행은 급작스럽게 떠났다. 4년 동안 지치도록 다녔던 직장생활을 마치고 여유를 찾겠다고 마냥 쉴 거라며 엄마랑 동생만 다녀오라고 큰소리 뻥뻥 쳐대던 내가 변덕을 이기지 못하고 출발 2일을 남기고서 "엄마, 나도 데려가!"라는 말을 무책임하게 남긴 탓이다. 그런 나를 뒤로하고 재빨리 항공권부터 알아보는데 엄마의 한마디
"빨리도 말한다. 요번 여행 컨셉은 힐링이야. 여유롭게 다닐 거고 수현이(동생) 생일 파티도 할 거니까 몰래 선물 준비해 놔! 난 이미 준비했어~ "
역시 우리 엄마. 콘셉트도 쿨함도 여전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준비를 끝내고 도착한 겨울의 제주는 생각보다 크게 춥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겉옷을 몇 개 챙기긴 했는데 저녁에 부는 비바람을 제외하고는 여행의 큰 무리는 없을 정도였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2월의 제주는 참으로 변덕스러웠다. 비 때문에 맑은 하늘 보기가 어려웠고 사진 찍기에도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무겁게 들고 다닐 우산보다 우비를 필수로 챙기길 바란다.
힐링 테마에 맞게 잔잔하고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으로 정한 코스 중 하나였다. 식사 후에 산책하며 소화시키기 좋은 곳이다. 우선 시끄럽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차분한 분위기가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복잡한 생각들이 있다면 저벅저벅 해안가를 걸으며 풀어놓고 오기에 적합한 곳이다. 참고로 근처에 마땅한 카페가 하나도 없으니 음료는 미리 준비해 가길 바란다.
전공이 건축이나 디자인, 예술 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평소 관심은 많았던 터라 서울에 있을 때에도 전시회나 박물관을 자주 가는 편이었다. 마침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제주도에 설계한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찾아가 보았다. 평소 박물관을 찾아다니거나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엄마 조차 정말 좋았다며 칭찬에 칭찬을 거듭했다. 나 역시 우와 라는 감탄사를 자연스레 자아내는 이색 체험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총 4군데의 전시관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특히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이 전시된 제3전시관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반짝임, 2008> 은 100개의 시시각각 빛이 바뀌는 LED 전구와 거울을 이용해 마치 내가 다른 시공간에 들어온 기분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이 외에도 외부의 조형물들 또한 인상 깊었다.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교회였다. 아니 평범한 교회라고 하기엔 조형물의 느낌이 센스 넘쳐 보였다. 십자가도 겉으로 티 내듯 보이지 않고 정교하고 조용하게 창문처럼 나있다. 교회 주변으로 호수처럼 물이 흐르고 있었고 동시에 물이 바람에 흔들려 내 쪽으로 교회 전체가 둥둥 떠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세 모녀는 기독교라 그런지 감회도 남달랐다. 주일날에 가게 되면 예배도 드릴 수 있다던데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예배당 안까지 들어가 보고 싶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동생의 생일파티 장소까지 도착했다. 동생이 알아보고 또 알아보았던 팬케이크로 유명한 카페라고 한다. 커피 메뉴는 기본 투샷을 제공한다는 이 곳 살롱 드라 방 애월 카페는 빈티지스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게 사랑스럽기도 하고 쾌쾌 묵은 듯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세련스럽기 까지 하다.
신기한 메뉴와 더불어 맛과 플레이팅까지 여자들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다. 뭐랄까 오랜만에 소꿉놀이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피크닉 온 느낌까지 지울 수 없었다. 카페가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근처가 한산하니 시끄럽지 않고 좋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수현이~ 생일 축하합니다!"
세 모녀가 도란도란 앉아 노래 부르며 깜짝 생일 선물과 편지로 축하의 감동을 더했다. 참고로 주말엔 영업을 하지 않고, 평일에 가더라도 웨이팅이 있을 수 있으니 바쁘게 움직이는 일정이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마지막 날의 임팩트를 심어보고 싶다면 몸을 살짝 피곤케 해보는 것도 좋겠다. 비 오는 날 우리 세 모녀는 새별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그냥 오르는 것도 벅차 보이는데 비까지 왔던 터라 그때의 다리 알베 김은 평소 운동부족의 내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각자 캐리어에서 주섬주섬 우비를 챙겨 입고 도착한 새별오름. 며칠 뒤 일 년에 한번 있을 새별오름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정월대보름에 액운을 몰아내고 다복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 들불 축제를 앞두고 있던터라 오름 중간중간의 들풀들이 밀려서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비가 와 그런지 우리뿐이었다. 미끌한 오름을 꼭 정상까지 오르겠다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난리가 났다. 별거 아니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만만하게 볼일이 아니다. 해발 519.3m이다. 무시하지 말고 오르길 바란다. 나는 새별오름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역시 사람은 몸이 조금 고생을 해야 더 깊게 간직 하나보다. 고생 끝에 오른 새별오름의 정상은 무언가 가슴을 먹먹케 했었다. 주변의 무덤들 때문인진 몰라도 뻥뚫린 듯한 허공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높은 곳에 올라와 보니 아래에 있는 것들이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였다. 그 또한 우리라는 게 무언가 슬프기까지 했지만 그 슬픔도 잠시, 내려올 때의 다리 후들거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긴장을 늦추지 말길 바란다.
이렇게 나는 총 여름과 겨울. 두 번의 계절을 제주에서 보냈다. 아직 느껴보지 못한 봄과 가을의 제주도 어떨지 궁금할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이 아니라 기회를 만들어 꼭 가볼 셈이다.
끝으로 못해도 1년에 한 번쯤은 여행을 떠나라고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굳이 해외가 아니라도 좋다. 당신의 생각과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까운 어디라도 떠나 여행을 통해 가져보기를 권한다. 거기에 조금 더 가미한다면 '가족'과 함께 하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소홀하게 대하고 있을 나의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그 당시 이곳저곳을 바삐 돌아다닐 땐 모르겠지만, 여행 기간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보면 그 소중함을 알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근사한 추억들이 삶의 비타민과 같은 영양제 역할을 해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 세 모녀는 매년 제주를 찾을 것이다. 홀로 떠나는 여행도 의미 깊지만,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준비하고 떠난다는 것은 든든하게 즐겁다. 게다가 가족과 함께 한다면 인생에 있어서 몇 안될 큰 재산으로도 남을 수 도 있는 좋은 기회이다. 물론 여행 도중 마찰이 생길 수 도있고,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생길 수 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는 분명 그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의 묘미를 찾아낼 테니 말이다.
빙수와 파스타 끝으로 후식 파이까지 꼭 먹어보길 추천한다. 가격 대비 양도 많고 한마디로 예쁘게 맛있다.
'한라봉 번'이라고 무한도전에도 나왔었다고 한다. 가격도 착한(3000원) 입에서 빵은 사르르 녹으면서 한라봉 식감은 느낄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애월에 가게 된다면 꼭 들러보길 바란다.
가는 길이 찾기 어렵다면 내비게이션에 '봄날'카페나 '놀맨'을 검색해서 가도 좋다. 영업시간은 10:00-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