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여행에 대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여행은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은 이미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은 설렘이라는 값 비싼 감정을 얻을 수 있는 근사한 방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막상 이탈리아에 발을 디딜 때의 나는 여행을 시작한 지 제법 오래된 상태였다. 이미 마음은 이탈리아에 와 있은지가 제법 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히려 진짜 여행이 시작된 후에는 여행의 마지막이 얼마 남이 않았음을 직감한다. 고작 10일, 이제 막 이탈리아에 첫 발을 디뎠지만 매 순간이 아쉽다.
여행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마음이 초조해지기보다, 오히려 정신을 차리려 했던 기억이 난다. "매 순간을 더욱 집중해서 여행에 마음을 모으자." 이것은 내게 주어진 여행의 시간을 스케줄로 꽉 채우자는 다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한 것들이다. 해야만 하는 무엇인가로 가득 찬 하루를 살다가 삶에 지쳐 떠나온 여행을 다시 그런 방식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여행의 시간은 진한 위스키를 한 모금을 머금은 후 향과 맛을 느끼듯 깊게 음미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만약 쉽게 삼켜버린다면, 그리고 다음 또 그다음을 탐닉한다면 나는 여행의 시간에 금방 취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정말 멋진 장면은 한 순간이라도 좋다. 그 순간이 여행 전체에서 단 한 번 뿐이라해도 그것으로 족하다. 단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쳐버리지만 않는다면 얼마나 좋으랴.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잠시 복잡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로마를, 피렌체를 눈에 담으며 열심히 걷고 쉬며 하루하루 보내는 것이 여행의 시간이었다.
시간은 열심히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해가 지는 때(나는 이때를 포토타임이라고 부른다.)가 되면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마음에 들었다. 실용적이면서도 적당한 포인트를 갖춘 그들의 옷차림이 참 좋았다. 내가 만나게 되는 한 장면 한 장면들이 모두 나에게는 의미 있게 다가왔고, 최대한 그들의 모습을 머리 속에 담으려고 주의 깊게 관찰하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난 매 순간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온 지금, 사진을 한 장씩 꺼내볼 때마다 생각나는 기억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다녀온지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가지만 내 머리 속에 박힌 그 날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한 가지 물음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행하듯 일상을 살 수는 없을까? 어떤 사람은 이런 물음을 하다가 영원한 여행자로 살겠노라 세계여행을 떠나기도 했을 것이다. 여행하듯 매일의 삶을 살 수 없다면 매일 여행을 하면 되니까.
여행을 하듯 즐겁게, 그리고 매 순간 집중하여 그 의미를 마음속에 새기면서 살아간다면 내 삶도 분명 누군가가 본받고 싶어 하는 삶이 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깊게 음미하며 제대로 즐기며 산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여행지에 대한 그리움에 마음을 내어주고 지인의 여행 계획이라도 들을 때면 부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는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