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업, 모두에 적용되는 공통의 법칙
먹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요리도 하다보니, 건강한 식재료에 관심이 많다. 왠만하면 유기농, 친환경, 무항생제, 자연방사 등의 수식어가 붙은 것을 선택하려 한다. 가격때문에 타협할 때도 있고, 어머니들 사이에서나 구전되는 '찐' 생산자 직송 루트 확보에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뿌리가 되는 농촌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초록초록한 인테리어에 러스틱 라이프가 물씬 느껴지는 자연 친화적 컨셉 식당은 좋아하지만, 간혹 국내 여행을 할때 차창 밖으로 마주하는 날것의 옛된 시골 풍경은 다소 압도적이라 무언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딱 이정도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게 농업과 농촌 문제는 첨단 과학만큼이나 무지의 영역이었다. 식생활을 둘러싼 밸류 체인에 무관심하다보니, 선택에 있어 쾌적하고 편안한, 보기 좋은 포장지로 한 겹 싸여있는 것을 선호했다. 나와 유사한 니즈를 가진 소비자에게 크고작은 온라인 기반의 농산물 유통 채널이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농산물 유통도 점점 소비자 친화적이고 다변화되는 시장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런 시도들이 생산자에게도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 줬을까?
이런 얕은 의문이나마 가지게 된 건, '초록코끼리' 김만이 대표를 만난 이후였다. 그는 현재 충남 홍성에 본사와 거주지를 두고 친환경 농산물 가공, 유통 및 지역 활성화를 위한 커뮤니티 형성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중이다. 쭉 서울에서 자라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가 홍성행을 결심한 건, 진짜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촌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테헤란로에 본사를 둔 비슷한 가치를 말하는 많은 회사들이 있지만, 막상 농가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80년대에 제기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을 정도로 정체된 농촌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그는 그동안 외면받았던 생산자 측면의 접근을 우선시했다.
첫걸음은 농가와의 신뢰 구축이었다. 많은 도시 사람들이 유사한 접근을 했다가 취할 것만 취하고 떠났기에, 그들의 경계심을 푸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새벽부터 직접 농사일을 도왔다. 농가 분들과 똑같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오랜 시간 꾸준히 보이자 그분들도 하나 둘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주변 농가에 그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한 해동안 농가에서 겪는 문제를 함께 겪고, 고민하며, 해결하는데 힘을 보탰다. 그의 첫번째 사업 아이템인 친환경 밀키트에서부터 지역 거점 중심의 농산물 유통 서비스까지, 그가 만들고자 하는 모든 비지니스 모델의 중심에는 생산자에 대한 관점이 깃들어있다. 소비자에게 우리 농촌의 가치를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으로도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사업 전반에서 언더독을 자처한 승부를 이어간다. 다수가 주목하지 않는 농업을 택하고, 소비자 중심 비지니스를 구축하기엔 불리한 농촌행을 택하고, 대량 물류 허브의 효율 대신 지역 중심 물류 재구성의 비효율을 택한다. 모든 구간에서 남들이 택하지 않은 전략과 방식으로 판을 엎고자 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솟구치는 응원의 마음과 더불어 내심 가야할 길의 험준함이 예감될 즈음, 그는 담담하고도 단호히 말한다. 무언가를 바꾸고 사회에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에서 하는 노력의 몇 배 이상이 필요하며, 한 사람의 십년은 완전히 소진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긴 해요. 내 청춘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런데 내 청춘을 바쳐서 뭔가를 변화 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건 아까운 시간이 아니겠다고 스스로의 답을 내리고 나니, 모든 게 선명해지더라구요”
창업 과정의 우여곡절 끝에 그가 가장 크게 얻은 교훈이 있다면, '무언가를 얻으려면 먼저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도 번아웃과 슬럼프를 연이어 겪은 적이 있다. 그것도 매출이 가장 높은 시기, 사업이 안정되어가는 듯 보이던 시기였다.
10년의 청춘을 내어주고라도 얻고 싶은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한들, 전력 질주와 마라톤을 번갈아 하는데 온 힘을 쏟다보면 문득 아득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일이 결국 내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 자문하는 사이, 회의섞인 의구심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 여정을 지속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랄프 왈도 에머슨은 그의 저서 '자기 신뢰의 힘'에서 '힘이란 내면으로부터 샘솟는 것'이라고 말하며, '스스로 자신의 기둥이 되어' 자신의 가치를 흔들림없이 고수할 것을 강조했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은 길 위에 흩뿌려진 가치의 조각들을 찾아 내면의 가치관이 그린 퍼즐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있는지 모른다.
'사회문제'를 '비지니스'로 해결하는 소셜 벤처 스타트업이란 태생적으로 참신한 모순 속에서 균형점과 해법을 찾아가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이들의 가능성에 쉬이 한계를 두는 경직된 사고와 맞서야 함을 물론이다.
어쩌면 소셜 벤처의 진정한 의미는 효율과 비효율, 메이저와 마이너,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처럼 대립되어 보이는 한 쌍의 가치 기준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다른 하나가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다는 의외의 가능성을 가시화해 보여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을 중요시 할 것인가에 대한 기존의 합의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문제를 바로잡고, 다수 논리의 전횡에 쉬이 포기하지 않는 것 말이다.
시장 논리 상의 비효율을 택하는 대신 지속 가능성을 통한 장기적 효율을 택하는 것, 마이너의 영역에서 메이저가 되는 것, 불리해 보이는 위치에서만 구축 가능한 차별성으로 유리함을 점하는 것. 초록코끼리가 이 모든 가능성의 영역에서 만들고자 하는 변화는 '먼저 내어줘야만 얻을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이 관통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언더독'으로서의 승부수를 띄우고도 태연하리만치 단단한 그의 모습은 내게 여러 질문을 남겼다. 내가 귀 기울여야 할, 내 안의 작은 거장이 외치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얼만큼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언더독스는 국내외 혁신 창업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며 창업 전반을 지원하는 창업전문 교육기관입니다. 2015년 설립된 후, 전현직 창업가들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개발한 실전형 창업교육 콘텐츠를 바탕으로 약 1만여명 혁신 창업가들을 배출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자체∙기관∙기업과 함께 실제 창업에 최적화된 교육 프로그램 및 코칭을 제공하고, <사관학교>, <언더우먼> 등 자체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언더독스와 함께한 1,352개 창업팀 중 82개 팀이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었고, 예비 사회적기업은 39개, 5개 창업팀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언더독스는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3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 26개 도시 44개 파트너와 협력하며 글로벌 사회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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