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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Aug 06. 2022

미국에서 다시 캐나다로

라스베가스는 공항에도 슬롯머신이 있다

굿바이, 라스베가스!

열흘 간의 미국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가는 날. 호텔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매캐런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의 끝은 떠나는 그 마음 한 켠이 늘 아쉬워 한 번 더 뒤돌아보기 마련인데, 이날은 어쩐지 캐나다로 돌아가는 발걸음무척 가뿐했다. 매캐런 공항에 들어서자 '웰컴 사인'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라스베가스에 오면 꼭 인증샷을 남겨야한다는 스트립 초입의 '웰컴 사인'. 날도 덥고 줄도 너무 길어서 그냥 패스했던 게 못내 아쉬웠었는데, 공항에서라도 보게 되어 반가웠다. 이제 웰컴이 아닌, 굿바이 라스베가스.

그런데 매캐런 공항 내부에서 발견한 또 다른 뜻밖의 풍경이 있었으니. 바로, 웰컴 카지노!


라스베가스는 공항에도
'슬롯머신'이 있다.


'도박'의 도시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공항에까지 친히 슬롯머신을 배치해두다니.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일관성 있는 테마의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어딜 가나 마음만 먹으면 카지노를 할 수 있도록 곳곳에 환경을 만들어뒀다. 공항 내 슬롯머신 운영권은 현지 호텔 카지노의 소유라고 하는데, 이 도시를 찾는 이들의 지갑을 샅샅이 훑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아무리 그래도 공항까지 와서 누가 이걸 할까. 궁금해서 기다리는 동안 관찰했다. 라스베가스를 뜨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생 대역전을 꿈꾸며 마지막 한 탕을 노려보. 지폐를 꺼내 머신 앞에 앉는 사람들이 간간히 꽤 있었다. 실제로 비행기 탑승 전에 재미 삼아 돌린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터져 거액의 당첨금을 거머쥔 승객들의 사연이 뉴스에 오르기도 한다.

매캐런 공항 내 천 여대의 슬롯머신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터진 사상 최대의 잭팟은 2005년, 무려 396만 달러(약 44억 원)의 당첨금이었단다. 그 외에도 시간 때우기 용으로 달랑 5달러 지폐를 넣고 돌린 머신에서 30만 달러(약 3억 원)가 터진 경우도 있다. 귀갓길 횡재 사연들에 귀가 잠깐 솔깃했지만, 다행히도 카지노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 남의 일 마냥 관찰자 노릇만 했다. 이미 호텔에서 경험 삼아 소소하게나마 수익으로 뷔페 한 끼 더 맛있게 먹었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공항에서 간단히 때우는 끼니론 햄버거가 제 격. 그러고 보니 첫 끼도 인앤아웃 버거였는데, 미국 여행의 시작과 끝은 햄버거와 함께였다.

라스베가스에서 밴쿠버까지는 약 두 시간 반. 비행기가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계속 사막이다. 지리적인 풍경은 볼 게 아무것도 없어도 신기해서 자꾸만 보게 된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일 텐데 중간중간 나있는 길은 무슨 길이며, 누가 왜 이곳을 지나는지. 혼자 상상해본다.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여행의 풍경이 있기에 창가 자리를 사수한다. 마지막으로 본 미국의 풍경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네바다주의 광활한 사막이었다.




밴쿠버, 안녕 반가워!

잠시 눈을 감고 미국에서의 시간들을 차근차근 복기하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착륙 안내방송이 울렸다. 창밖으로 밴쿠버 다운타운의 모습이 보인다. 캐나다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딘가 다녀와서 우리 동네에 접어들면 익숙한 풍경에 눈도 마음도 편해지듯이. 고작 일 년 산 이 동네가 내 동네처럼 포근했다. 밴쿠버의 여름은 계절을 묶어두고 싶을 만큼 좋다.

돌아온 날 자주 들르는 카페에 갔다. 엄마가 어릴 적 만들어주시던 설탕 토스트 맛나는 기본 중의 기본 메뉴지만. 빨간 단풍잎 국기를 걸어놔서 그런지 캐나다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던 인테리어에 즐겨가던 곳이다. 늘 먹던 메뉴를 주문했다.

미국 여행 이야기를 친구에게 한참 풀어놓으며 서로의 경험을 나눴다. 나는 내 여행도 좋지만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 걸 참 좋아한다. 여행자의 다소 상기된 초롱초롱한 눈빛이 좋다. "미국 다녀오길 잘했다."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갈까 말까 고민될 땐 무조건 가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나서 효율적으로 잘 다녀올 수 있는 디테일을 고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아쉬운 여행은 있을지언정 후회되는 여행이란 건 없으니까!

어딘가 푸근하고 시골스런 캐나다 서부의 도시 밴쿠버, 십 년째 그리워하는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고작 일 년 살아놓고 고향이라며 누군가는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의 절대적인 보다 중요한 건, 시간의 밀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일지라도 시간을 어떻게 채웠느냐가 시간의 질과 깊이를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분일초의 귀함을 알고 행동하는  여행자의 시간은 밀도가 다르다.


당시 나에겐 미국에서의 열흘과 

캐나다에서의 일 년이 그런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듯 보낸 어느 해보다도 짙게 경험하고 사유하며 성장할 수 있던 고농축의 시간. 매일을 그렇게 살아간다면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그렇게 살겠노라고 다짐했었다.


'뜻밖의 미서부' 여정은 끝이 났지만 나는 또 새로운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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