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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Aug 02. 2022

그랜드캐년이 그랜드캐년했다!

여행의 반경, 삶의 반경


시티뷰자연뷰 중 하날 고르자 '자연뷰'파다. 자연은 규모를 떠나서 대게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특히 말문이 막힐 만큼 웅장자연과 마주 서서 '작은 인간'이 되는 기분을 좋아한다. 

자신을 지구상에 견주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자연이라는 거울을 비추어 한참을 보고 느껴본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것도 없다.  

자연 속에서 둘러싸여 있을 때 얻게 되는 에너지는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하다.



라스베가스 여행에서 시티뷰가 <스트립>이라면,  자연뷰는 <그랜드캐년>이다. 다섯 시간 넘게 달려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40도가 넘는 날씨에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바싹바싹 타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치만 습하지 않아 견딜 수 있는 뜨거움이었고, 청명한 하늘이 예쁜 날이었다.



주차장에 캐년 투어 버스들이  맞춰 정차해있다. 그랜드캐년을 만나러 비장한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린다. 아직까진 그냥 흔한 길인데. 사진으로만 보던 그랜드캐년이 갑자기 나타나기라도 하려나?



한걸음 한걸음 기대감으로 가까이 걸어가자, 정말 갑자기 그랜드캐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첫인상은.

그랜드캐년이 그랜드캐년했다!


어떤 수식어도, 비교 대상도 떠올릴 수 없었다. 견줄 수 없는 압도적인 스케일에 멍하니 멈춰 섰다. 버스에서 만나 일일 짝꿍이 된 크리스티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탄성의 리액션을 쏟아냈다. 반면, 나는 조용히 그 첫 장면을 두 눈에 담으려고 온몸으로 집중하며 애쓰고 있었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그랜드캐년. 북서부 고원지대가 콜로라도 강에 의해서 깎이며 생겨난 협곡으로 길이가 약 450km나 되는 거대한 규모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남쪽 사우스림과 비교적 접근이 통제되는 북쪽 노스림으로 나뉜다.


마침내 이 풍경을 보기 위해 미국에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로는 발끝만큼도 안 담긴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힘든 비현실적인 뷰.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돌면 다각도로 뷰포인트가 있다. 붉은색 지층의 병풍을 둘러놓은 듯한 모습이 언뜻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달라진다.





'여행의 반경'을 넓히면
'삶의 반경'도 넓어진다.

새로운 시야가 열리다 못해 확 터진 것 같은 느낌. 여행의 반경을 넓혀가 일은 이토록 짜릿하다.


어릴 적 가족들과 갔던 정동진 겨울 바다의 기억.

학창 시절 수학여행에서 본 한라산과 오름의 장면.

스카이다이빙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땅의 풍경.

여행은 항상 새로운 풍경을 눈에 담는 일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찾아 그 범주를 넓혀 가 여행은 삶의 반경을 넓혀가과정이다. 



그랜드캐년은 단순히 어떤 공간이 주는 압도감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경외가 있다. 얼마나 깎이고 깎여 지금에 이른 걸까. 이들이 겪은 그 시간 앞에 한없이 겸손해진다.



캐나다에서 봐왔던 대자연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화가 밥 로스 아저씨가 낚시 의자에 팔레트를 들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 같은 풍경. 맑고 파란 하늘의 하얀 구름마저, 마른 나뭇가지의 마저 

거대한 예술 작품의 CG 같았다. 그 와중에 사람을 피하지 않고 다가오는 캐년 다람쥐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세상은 우리아직 미처 보지 못한 수천만 가지의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한 장면이라도 더 눈에 담아 나의 것으로 흡수하려고, 그 풍경을 찾아 자꾸만 멀리 가는 건 아닐까.



나보다 사진 찍기에 더 열정적인 크리스티나는 캐년 앞에서 다양한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상의를 두 개나 더 챙겨 왔다며 가방에서 옷을 꺼내 든다. 우리 둘 다 겁은 많아서 절벽 가까이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아슬아슬하게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실제로 추락 사고도 종종 뉴스에서 들려오지만 무리하지 않으면 수백 미터 아래 캐년 낭떠러지로 떨어질 일은 없으니 조심하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니며 사진 찍다가 복귀 시간을 넘겨버려 주차장에 갔을  버스를 떠나보내야 했다. 캐년에서 미아가 될 뻔했으나 다행히 다음 스팟으로 바로 이동하는 버스를 가까스로 얻어 탔던 다이내믹한 여행의 기억. 뜨거운 태양 아래 쪼리를 신었던 발은 그 모양대로 새까맣게 탔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선 벌써 과거가 되어버린 오늘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둘이 희희낙락했다. 그러가다도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크리스티나를 보며, 여행을 통해 잊고자 했던 그 사람을 잘 보내주고 크리스티나가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랐다. 오렌지노을이 물든 하늘은 깜깜한 밤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왔던 길을 부지런히 달린 버스 덕분에 드디어 라스베가스 시내의 화려한 불빛을 다시 만났다. 출발 지점이었던 호텔에 돌아오자 내 집에라도 돌아온 기분이었다. 일일 짝꿍과도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하루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웬만한 친구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던 크리스티나. 호텔 1층 카지노 의자에 잠시 앉아 수첩을 꺼냈다.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머지않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겠지만, 살다가 언젠가 다시 만나면 오늘을 나누기로 했다. 서로의 빛나는 꿈과 여행을 응원하며 아쉬움 가득 안고 헤어졌다.




새벽같이 나가서 14시간 만에 호텔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 미서부 여행의 마지막 날 밤, 만감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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