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덕후 비긴즈 8
아직 하얀 입김이 나오는 2월의 아침. 둘둘 감은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걷는다. 몸은 저절로 회사를 향해 가는데 머릿속은 다가올 수련회 준비로 복잡하다. 취준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인 사람들.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수련회라는 뻔한 행사는 오히려 부담이 아닐까.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엔 무지한 채 개인의 안위를 위해 놓아지는 일종의 마취제가 되는 건 아닌가. 어쩌다가 신앙은 어렵고 버거운 일이 되었나... 복잡한 생각이 엉켜 한숨으로 토해지려는 찰나, 옆에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면서 걸어요?”
놀라서 옆을 보니 스승님이 서 있다. 이거 꿈인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얼음이 되었다. 스승님이 옅은 미소를 한 번 더 짓자 나도 모르게 목도리로 얼굴을 다 가리고 눈만 말똥히 열어 스승님의 실물을 확인했다.
"꽤 오래 따라왔는데 모르던데요?"
전에 어느 교회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회색 정장 차림. 여전한 검정색 코트. 그리고 한 손에는 검정색 캐리어를 끌고 있는 낯선 모습이었다.
“오늘 어디가세요?”
“아 네, 뭐…공부하러?”
금, 토로 기도원 같은 데 가시는 건가. 공부하러 양복에 캐리어를 끌고 간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간다. 워크샵 이후로 카톡은 꽤 자주 주고받았지만, 업무 시간 외에 이렇게 실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한 기회가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이야! 말하고 싶은 것도, 여쭤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옆에 물성을 가진 존재로 서 계시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옆에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고...
"수련회 준비를 하는데요. 사회참여적이지 않은 교회를 보면서 회의감도 많이 들고요. 물론 예배 드리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우리만의 신앙이 되는 것 같아서 맞나 싶기도 하고..."
"성경에는 느헤미야, 에스라의 통혼 금지 개혁이 실려있잖아요. 그렇지만 그 개혁에 반대한 무리가 쓴 룻기 또한 성경에 실려있어요. 이방 여인과 다윗 자손의 사랑 이야기는 통혼 금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데도요. 그러나 어느 쪽도 하나님의 일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이 그분의 신비이지요..."
보도블럭에 드르륵 거리는 캐리어 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스승님의 말을 들으며 내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 녹음해야 하는데 휴대폰을 지금 꺼낼까 말까...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21세기 지혜자의 설교는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진짜 천재신 것 같아요."
"네?"
"진짜 너무 멋있으세요"
"아이고 정말 멋있는 사람 못 보셨나보다..."
나도 모르게 뇌에 있는 말이 필터를 거치지 못하고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을 돌렸다.
“저는 작년에 세월호 사건이 제 인생에 엄청 큰 전환이었어요. 그전에는 세상을 아예 모르고 교회 안에만 있었던 것 같고요. 저의 무지가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도 신앙이 아닐까 고민이 깊어졌고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저는 용산 참사가 그랬던 것 같고… 밀양 송전탑 사건도 그렇고요. 도시에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전기가 시골의 어르신들께 피해가 되는 게 참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내가 일상에서 쓰는 전기가...”
“어머, 그래서 엘레베이터 안 타시는 거였어요??”
"뭐...계단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회사 사무실은 오피스텔 3층에 있었는데 스승님은 늘 계단으로 이동했다. 운동을 하시는 건가…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전기 때문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순간 “아~그럼 앞으로 일하시는 자리에 형광등도 끄고 노트북도 안 쓰시는 걸로 해야겠네요?”라며 웃었다. 대화는 어색하게 끝이 났다. 돌이켜보니 그랬다. 존경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고작 그 정도의 감상적 실천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영악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내 모습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는지도. 아니, 용산이고 밀양이고 아는 것이 없어서 부끄러운 마음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두 개의 문]이라는 용산 참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다. 2009년 용산에서는 대규모 부동산 개발 정책이 발표되며 많은 사람들이 일터와 집터를 잃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대항하여 시위를 시작한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인권을 짓밟는 과잉 진압을 강행했다. 시위를 하던 철거민들과 특공대원들이 다치거나 사망했다. 수사 과정에서 시신이 유가족 동의 없이 부검되거나 관련 문건 수 천 건이 삭제되는 일들이 반복됐다. 서울시는 미온적 태도로 반응했고 청와대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여론전을 준비했음이 드러났다. 책임자는 사퇴는커녕 거대 공기업의 사장 자리에 앉았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부동산 성공신화와 재개발, 뉴타운 광풍이 있었다.
돈과 권력의 힘이 약한 사람들을 쉬이 스러트리는 모습이 책에서 읽은 원리와 맞아 떨어졌고 세월호와 겹쳐졌다. 그리고 2009년에 선교에 헌신하겠다고 울며 기도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나는 신상 프렌차이즈에 열광하고 쇼핑을 좋아하는 철없는 대학생이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서 울부짖는 이웃의 목소리 조차 듣지 못했던 내가 어느 이상적인 공간에서는 무엇을 하길 바랐던 것일까. 손이 떨렸다. 어쩌면 세상은 수많은 세월호로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오랜 역사 속에서 생명은 돈과 저울질 당해왔다. 문제는 나도 그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노트북을 닫고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흘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