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부장 Mar 29. 2023

아름다운 수미쌍관

그때, 어떻게 해서든지 추석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헤어지기로 한 마당에 굳이 시댁에서 명절을 지낼 필요는 당연히 없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렇게 결국 헤어짐에 이르렀다는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자신이 왜 이혼남이 돼야 하는지 지금도 모르겠어 하는 법원 앞에서의 그의 표정은 참으로 어색했다. 


그는 이혼은 하기 싫지만, 자존심 때문에 나를 잡는다거나 나와 타협한다거나 할 사람은 아니었다.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서류를 미룰 때는 저러다 번복하는 건 아닌지 틀어질까 싶어 약간은 조마조마했었다. 이렇게 판사 앞에 당도하니 벅차오르는 뿌듯함에 기뻤다. 


“네.”

“네.”


딱 한 음절씩의 대답으로 드디어 끝났다. 결혼식 할 때의 우리의 대답도 이와 같았던 걸 생각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수미쌍관을 이룰까 감탄했다. 아이가 없으니 절차는 간단했다. 읽기도 전에 올라가버리는 영화 자막보다 더 빨랐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걸로 하며 서로의 행복을 빌며… 아니 그런 하나마나한 인사를 했었는지는 들떠있었던 나로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할 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생각에 행복했고, 이혼할 땐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되어서 행복했다. 나의 두 선택은 모두 행복했다. 이게 바로 이혼도 축하받아야 할 이유인 것이다. 내가 조금 더 똘끼 충만한 아이였다면 아마 결혼식처럼 잔치도 하고 축의금도 받고 뻑적지근하게 치렀을 것인데, 나름 단정한 나의 성격이 아쉽긴 하다. 



헤어진다 했을 때, 남자는 늙어서 순해지는데 참고 살지…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으로 밥상을 차려주는 엄마, 이유를 묻지 않는 아빠. 뭐든 내가 한 결정은 그럴만한 것이라고 언제나 늘 믿어주셨다. 비빌 언덕이란 게 이런 거 아닐까. 파티 대신에 엄마 아빠와 함께 푸짐한 저녁상을 보약처럼 먹었다. 


나는 돌싱이다.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었다. 남편이 조금 더 가정적이었다면 나는 부부로 잘 살 수 있었을까? 다들 그러고 사는데 나는 왜 못살까? 전두엽에 자유가 한가득인 우리 둘은 어쩌면,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은 결혼과는 애초에 사맛디 아니한 인간형들이란 생각도 든다. 


참고 사는 결혼 생활을 끝낸 건 전혀 후회 없다. 이것이 어떤 질문에도 변치 않는 정답이다. 되찾은 자유는 잘 사는 게 뭔지를 깨우쳐주었고, 인생을 향유할 줄 아는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혼 예찬론자다. 결혼을 처음부터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이혼을 해야 할 사람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댁 가기 싫다는, 혼자 사는 내가 제일 부럽다는 친구한테 “야! 너두 할 수 있어 이혼.”

부부 싸움하고 말 안 한 지 3일째라는 친구한테 “지금이 기회야, 바~로 이혼해!”

손 하나 까딱 안 한다는 남편, 그 인간 밥 차려주는 게 벗어날 수 없는 감옥 같다는 친구한테는 “그럼 이혼해야지. 탈옥만이 네가 살 길이야.” 

아프다는데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영감이라니 “엄마, 이혼해. 그런 남자랑 왜 살아.” 

지인의 결혼 소식에는 “왜~? 어쩌다… 신중치 못한데. 하하하. 아니다. 빨리 다녀오는 것도 좋아.”


이혼한다 하면 열이면 열 명이 왜? 라고 묻지만 결혼한다 하면 왜? 라고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를 묻는 카뮈처럼 당연한 모든 것에 왜? 를 물어야 한다. 왜 아이를 낳는지? 왜 혼자 살지 않는지? 우리는 왜 일을 하는지?



인간이 태어나서 꼭 해봐야 하는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혼자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라는 의미는 독수공방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며 완전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일부러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혼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자유와 혼자 살아가는 사람의 자유에는, 인간 언어체계의 모순마저 느낄 정도로 굉장한 간극이 있다.


언제 혼자 살아보냐도 중요하다. 당연히 일단 성인이 돼서 독립도 해야 하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한번 혼자 사는 것도 의미가 참 남다르다. 그런 면에서 자녀가 출가했을 시기라면, 부부 각자가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따로 꾸려나가는 게 나는 개인적으로 참 멋지기도 하고 맞다고 생각한다.


예비 독거노인. 외롭지 않을까? 외로울 때도 있다. 오늘 밤을 못 넘기고 고독사할 것 같은 날도 있었더랬다. 그래도 실보다 득이 월등히 많다. 또한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인가라는 인간적 연민도 있다. 그럴수록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나 자신을 아끼고 위하면서 밝게 살다 보니 내 삶이 무척 사랑스러워지는 마법의 순간이 금방 찾아왔다. 


“이만하면 나는 너무 괜찮은 사람”


사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또 늘 아프지만, 외로움도 잘 타지만, 그래도 혼자가 좋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 취미 몇 개, 나의 고양이들,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엄마 아빠. 나는 좋은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내 책, 첫 사인은 엄마 아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