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이 출간된 지 4달이 지나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선인세로 지인들에 식사를 대접하며 어깨가 으쓱했던 시간도 가졌다.
물론 내 눈에만 그렇겠지만, 얼마나 빛이 나던지 서점을 훤히 밝히고 있는 내 책, 그걸 책방을 두 바퀴나 돌아보고서야 겨우 찾아낸 뒤 한참을 책 앞에 서있던 엄마,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나, 참으로 감동적인 역사의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작가증정용 책을 택배로 받아 열었을 때, 박스 한가득 내 책들을 보며 '작가됨'을 실감했던 날보다 백만 배는 더 벅찼다.
그리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당연히 예상대로 일상이 변한 건 없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다? 우리 집 고양이도 다 아는 언감생심. 그런데 달라진 일상이 전혀 없다는 문장은... 쓸 수 는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생각하기에 따라 말이다.
간단한 문법 파괴나 오타에도 ‘글 쓰는 사람인데 이러면 안 될 듯......’ 하며 고쳐 쓰게 된다. 나는 몰랐던 사소한 상식이라던가 누구나 아는 유명한 이슈를 모를 때, ‘책 쓴 사람이 그걸 몰라요?’라는 반응에도 ‘그러게요. 몰랐네요‘ 라는 태연함보다는 애매한 부끄러움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포털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책 제목과 내 이름 세 글자. 황 승 희. 지구를 뚫고 솟구칠 만큼의 찬란함과 더불어 어떤 자잘 토실한 무게도 느낀다고나 할까. 책 한 권에 무슨 왕관도 아니고 무게까지? 그래, 지나치다 할 수 있겠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그런 게 있었다. 내 글을 읽는 이와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끔 포장... 말고 진짜 글 쓰는 사람은 응당 좋은 사람이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거 말이다.
소위 글 쓰는 사람이라 다르다는 칭찬 혹은 편견, 책까지 냈다는 사람이 그러면 쓰나라는 성직자정도의 잣대를 들이대는 비난의 시선들. 간혹 나도 했을 법한. 아니, 했겠지, 나라고 별수 있나.
십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글쓰기 전에 독서모임 활동이 그랬다. 독서회를 시작할 당시 두 번 정도는 크게 놀란 기억이 있다. 회원들의 어마어마한 독서량에 놀랐고 그다음은 독서로 획득한 지식과 그 사람이 지닌 교양의 양과 질은 결코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거에 또 놀라며 속으로 잠깐 코웃음 쳤었다. 사실 그럴게 뭐람? 아니, 읽는 사람. 쓰는 사람. 책 낸 사람은 사람 아닌가?
어쨌든 본질은 먼저 사람이 되라는 거. 만고불변의 아름다운 진리이자 순서의 중요성에 이만한 표현은 없지 싶다. 글을 쓰다 보니 그래서 책까지 나오고 보니...... 훌륭한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실제로 착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마음이 깊은 곳에서 피어올라오는 게 있긴 하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것 또한 글 쓴다는 사람의 쩐내 나는 자의식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부터라도 착하게 산다 쳐. 그런데 과거는 어쩔 것인가? 소환하고 싶지 않은 찌질했던 선택들, 반듯하지 못했던 처사들...... 있지, 왜 없겠어. 그래서였나? 좋아요 댓글에 나의 그런 흑역사를 아는 지인이 내 뭔가를 폭로한 대댓글을 내가 마주하고야 마는, 그런 몸서리치는 상상을 한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이래서 죄짓고 못살고 도둑놈이 제 발자국에 놀란다고 하나보다. 남들은 진심으로 관심 없을텐데 말이다. 그 정도로 설마 내 책이 유명해질까 봐서? 이거야말로 진정한 k-김칫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