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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Apr 28. 2022

야옹이의 옹달샘

김장 봉투를 샀다. 이 봄에 웬 김장? 내가 큰 비닐이 필요한 이유는 김치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 침대 덮을 게 필요했다. 거의 한 달째 하고 있는 이불 빨래, 거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김장 봉투였다.

     

나의 첫째 고양이는 12살이다. 고양이 어르신, 일명 ‘묘르신’이다. 소변을 화장실이 아닌 곳에 보기 시작한 것은 여러 달 되었다. 병원 검사는 이상이 없었고 스트레스일 수 있으니 잘 살펴보란 말을 해주었다. 잘 살펴본다고 내가 원인을 알아냈다면야 다행이었겠지만 쉽지 않다.

     

고양이와 인간 중 누구든 하나가 상대의 언어까지 할 줄 안다면 진짜 좋겠다는 간절함이 바로 이럴 때다. 화장실 환경 개선이든 소변 훈련이든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다 눈 위에 서리 친다고 고양이의 실수보다 나의 대비마저 항상 반 발작 느리다.

     

여기저기 고양이의 소변을 쫓아다니며 뒤처리를 하면서도 이러다 설마 침대는 아니겠지 했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멍청했는가. 설마 설마 하던 일이 하루아침에 그냥 벌어지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다.

     

고양이 화장실을 침대에 올려놓기까지 해 보았다. 눈앞에 화장실을 보고도 이 화장실만 아니면 된다는 듯이, 누가 영역 동물 아니랄까 봐 자신이 개척한 새 침대로 화장실을 지정한 이상 그 구역을 고수하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침대 위에 있는 고양이 화장실

최대로 가능한 모든 청도 도구가 출동했으나 침대 겉만 닦였을 , 이미 소변을 머금은 침대.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라도 해야 했어서 부랴부랴 방수 패드를 구입, 침대 위에 깔았다.


방수는 될지언정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암모니아 냄새, 누워서 들썩거릴 때마다 증기 기관차의 연통처럼 칙칙 푹푹 뿜어져 나오는 그 쩐 내 나는 암모니아를 견디는 것은 두 어 달이면 충분했다.  

     

다시 구입한 새 침대는 초동대처를 잘하여 암모니아로부터 지킬 수 있었으니 침대 위에 있는 것만 빨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불 빨래만 하다 정말 하루가 다 갈 지경이었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이불은 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세탁기에서 이불이 돌아가고 있었고 세탁실 바닥에는 그다음 이불이 차례를 대기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다음 이불이 차례를 대기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큰 비닐을 생각해 내고 나서야 드디어 이불 빨래를 멈출 수 있었다. 김장봉투 3장을 테이프로 연결하여 침대 이불 위에 펼쳐 덮어놓았다. 외출하고 들어와 보면 그 비닐 위에 귀여운 옹달샘이 만들어저 있다.

     

새벽에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도 못할 암모니아 옹달샘. 아늑한 스위트홈의 비주얼로는 꽤 형편없지만 처리하기로는 이불 빨래보다야 대충 열다섯 배는 간편해져서 고맙기까지 했다.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다가도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난다. 뒤돌아보니까 우리 야옹이가 침대로 뛰어 올라 비닐 위에서 자리를 봐가며 엉거주춤 영락없이 쉬~~할 자세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장봉투 3장을 테이프로 연결

그동안 바로 내 옆에서도 소리 없이 완전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우리 고양이, 사뭇 담담해 보이는 현장범의 표정. “나뷔야, 안 돼~!” 나는 소리를 질렀고 고양이는 놀래 뛰어 내려가서 어기적어기적 진짜 화장실로 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학습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이 비닐하우스도, 옹달샘도 괜찮다. 나의 고양이와 함께라면.

     

고양이 소변은 정말 냄새가 고약하다. 일반세제에다가 표백 살균세제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어느 날엔가는 고양이가 컴퓨터 의자에 오줌테러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침대에만 온 신경을 쓰는 사이에 고양이는 의자를 노렸던 것이다. 버리고 또 사기엔 침대로 충분하지 않을까.

     

의자를 욕실로 굴려 들여놓고서는 스펀지가 있는 시트에 뜨건 물을 한참 부어대고 세제를 뿌려 이삼일을 불리고 표백 살균세제로 또 이삼일을 흠씬 적신 채 두었다. 샤워 호수로 충분히 물 뿌리는 것 말고는 헹굴 방법도 없다. 양지바른 베란다에 또 이삼일을 눕혀 겨우 말렸다.

     

그렇게 나를 고생시켰어도 나는 우리 고양이가 예뻐 죽겠다. 나이 든 고양이는 짠하다. 어지간한 장난감에 흥미가 없어진 지 오래고 잠이 늘었다, 잠만 잔다. 자는 모습도 전 같지 않다. 불러도 귀가 쫑긋하지 않을 정도로 시체처럼 잔다. 진짜 죽었나 식겁을 하고 흔들어 깨운 적도 있다.

     

나는 창 쪽으로 책상에 앉아 일하는데 하늘보다는 거실 고양이들을 볼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이제 보니 늙어가는 우리 고양이들이 내 등만을 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아직은 딱딱한 사료도 잘 먹고 책상을 한 번에 팔딱 올라오지만 조만간 중간 받침대도 놓아줘야 할까 보다.

     

언젠가는 시력과 청력을 읽어갈 테고 그루밍도 하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질병으로 아파하고 수척해질 우리 고양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난다. 펫로스 증후군은 정말 상상조차도 하기 싫다.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인가. 많이 쓰다듬어주며 잘 살필 뿐.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니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자 하는 자세만으로는 너무 무책임한 집사가 아닐까. 영양제 검색이나 하고 고양이와 나의 얼굴을 익힌 단골 동물병원을 만들어놓은 것 말고 뭘 더 할 수 있을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지금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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