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 사랑하네."
피디에게 일이란 사랑 같다. 이런 표현 너무 인프피스러운 것 같지만 인프피니까 해본다. 하려면 끝없이 할 수 있고 안 하려면 또 얼마든지 적당히 할 수 있다. 일신우일신 하려고 매일 머리를 싸맬 수도 있고, 방송사고 안 내는 선에서 무리 없이 끌고 가는 방법도 있다. 후자의 방식으로 일한다고 해서 프로그램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유와 비움도 연출 방향이니까.
애석하게도 나는 일을 많이 한다. 일밖에 모르는 모습이 창피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평일에는 거의 모든 신경을 일에 곤두세운다. 최근에 라디오 피디 막내들과 식사를 하는데 몇 시간 동안 내가 대화 주제를 일과 관련돼서만 끌고 가고 있었다. 라디오라는 매체에 고민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올해는 '친한친구'라는 프로그램을 론칭하기도 해서 더 워커홀릭이 돼 버렸다.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나 싶기도 하다. 쉽게 갈 수 있는 곧은길을 두고 일부러 구불구불한 길에 허리 숙여 꽃을 심어가며 걷는 기분이랄까. 지난 5월에 디제이가 속한 그룹이 컴백해 나왔을 때도 그랬다.
가까스로 출연 일정을 맞췄고, 이들을 기다리는 마음들을 알고 있기에 공개 스튜디오에서 현장과 호흡하며 진행하고자 했다. 스튜디오 사용이 겹치는 다른 프로그램 편성 시간을 조정하고(이 말은 해당 프로그램의 디제이와 게스트와 스태프 등등 적잖은 인원의 예정된 시간을 바꿨다는 뜻이다), 생방송 2시간 동안 2개 스튜디오를 사용해 기술부와 보이는 라디오 중계 담당자 분들을 힘들게 했다. 물론 가장 힘들었던 건 같이 길게 고민했던 작가님들이었겠지만. 스튜디오 옮겨가는 타이밍에 모두가 우당탕탕 뛰는 모습을 나중에야 봤는데 한마음으로 애써준 듯해 찡했다. 방송에 나온 작은 소품 하나하나도 고민의 흔적이었다.
지난 6월 디제이의 신곡 발매 당일 때도 유난스럽게 일을 벌였다. 현장에서 쇼케이스하고 있는 디제이와 청취자들의 연결 고리를 만들고 싶어서 무대 위에서 전화 연결을 했다. 디제이가 쇼케이스를 진행하는 와중에 라디오 전화 연결로 출연한 것이다. 디제이는 물론 소속사와 쇼케이스 연출 담당자 분들의 양해와 협조 덕에 가능했다. 음질이 썩 좋진 않았지만 현장감과 마음을 전한 의미 있는 연출이었다(고 자평한다).
7월 5일이면 'GOT7 영재의 친한친구'라는 프로그램이 100일을 맞는다. 시작부터 하나하나 만들어간 프로그램이라 100일이 유난히 뜻깊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또 사부작사부작 일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개편철도 아닌데 코너들을 부분 개편하느라 팀원들과 몇 주간 머리 꽤나 아팠다. 주말에도 혼자 고민을 이어갔다. 100일 방송을 위해 짤막한 구성물도 만들고, 각종 인쇄물들 디자인하고, 뭐 이런 거 저런 거 또 해봤다. 그런 모습을 보던 한 선배가 그랬다.
"이야, 피디스러운 피디다~"
정확한 워딩은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이런 뉘앙스였다. 칭찬의 느낌은 아니었고, 쉬지 않고 유난스럽게 일을 만들어서 프로그램에서 뭐든 해보려고 하는 개미 같구나 정도로 해석했다.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며 연출하는 게 꼭 맞는 방식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일신우일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부지런히 살다 보면, 고민의 끈을 놓지 않다 보면 뭐라도 되는 것으로 돌아오겠지 한다.
다 부질없고 건강과 가족과 개인의 행복이 최고라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도 잘 안 된다. 내게서 일을 빼면 뭐가 남을까. 지금이야 한창 달릴 때니까 몰두하고 있지만 이 계절이 지나면 허망할 것도 같다. 워커홀릭임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창피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