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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림 Nov 01. 2022

집밥, 엄마밥, 내 소울푸드

10월 30일 일요일 <GOT7 영재의 친한친구> 하다가


라디오 피디가 되고 난 뒤 절실히 느끼는 극악무도한 단점은 위로받을 데가 하나 사라졌다는 거다. 라디오키드에게 나만의 디제이가 없다니! 내 프로그램에선 연출하느라 바쁘고 다른 프로그램을 들을 땐 모니터링하는 기분이라 그렇게 됐다. 뭐든지 멀리서 봐야 그럴싸해 보이고 환상이 가미된 아우라 필터를 갖게 된다. 그것이 라디오든, 타인의 삶이든.




특히 내 프로에선 연출하느라 굳이 빗대자면 MBTI 중 T 성향에 빙의해 판단하곤 한다. 디제이의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받기 좀처럼 어려운 환경이다. 그런데 어제 생방송을 하던 중 DJ 코멘트에 마음이 흔들려 순간 눈물이 핑 돌아버렸다.


<친한친구> 3부 끝나갈 때쯤이었다. 이태원 압사 참사 직후 생방송이었고,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문자 메시지와 노래로 방송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한 청취자에게서 이런 문자가 왔다.


군생활하면서 한 번도
힘든 내색 없던 아들이
오늘 눈물까지 보이면서
속에 있는 얘기를 하네요.
지금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따스운 밥뿐이네요..


이 문자에 DJ 갓세븐 영재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저는 엄마가 해주는 밥이 최고예요.
저는 음.. 그냥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면요,
예전에는 그렇게 참 별로였다요?
그런데 그렇게 별로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 후회스럽기도 하고,
아마 지금의 아드님이 그 밥을 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조금 하면서
너무 맛있게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서울에서 혼자 살게 되면서 수도 없이 했던 생각과 후회가 DJ 코멘트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참 별로였다요?’라고 솔직한 마음을 머뭇거리면서 어색한 어미로 이야기하는 순간, 마음 어딘가가 푹 찔려버렸다. 웬일로 정확하게 위로받았다.


객지에서 사회생활 10년 하면 다 비슷한 정서가 있나 보다. 나도 그랬다. 엄마가 맨날 돌려가며 끓이는 국이 싫었고 찌개가 싫었다. 일하는 엄마의 피곤함을 생각하면 감지덕지였음을 이제야 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엄마가 만든 소고기뭇국을 따라 끓이고 있었다. 마음이 지쳤을 때, 속에서 따뜻한 뭔가를 필요로 할 때, 소고기뭇국을 끓인다. 엄마 맛이 좀 나나? 하면서.


사실 그날 엄마랑 나눴던 통화 내용 때문에 더 유난스럽게 다가왔다. 엄마가 전에 없이 치료받을 일이 생겼는데, 그 와중에도 나한테 꺼낸 이야기는 김장 김치였다. 김장 김치를 담가주려고 했는데 치료받게 돼서 경황이 없어 어려울 것 같다, 미안하다, 이런 말들. 김장김치 그게 뭐라고 나 사무치게 하려고 엄마가 작정했나 보다. 엄마의 엄마, 아빠 모두가 없는 첫 추석을 맞이했을 때도 엄마는 외려 나에게 전에 없는 진수성찬을 차려줬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엄마는 이제 내 머릿속 젊은 엄마가 아니다. 낡아가는 몸을 돌보느라 바빠지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도 철없이 엄마 김치가 여전히 제일 좋고, 엄마밥을 먹을 때 제일 행복하다. 이제 내가 엄마를 챙겨야 하는데 이렇게 챙김 받을 줄밖에 몰라서 나는 진짜 어쩌지 싶다.


DJ 코멘트 듣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 날 것 같아서 의자를 돌렸더니 DJ가 부랴부랴 물휴지를 통으로 갖다 줬다. 창피스러워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덕분에 지금 글 쓰며 대성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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