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2022
답이란 개념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은 대학 원서 쓸 때였다. 초중고 한국 교육과정을 거치며 체화된 건 동그라미와 엑스. 정답과 오답만이 있는 세계였다. 하지만 인생의 선택엔 정답이 없었다. 선택과 그 길을 따르는 책임만이 있을 뿐. 가나다군의 어떤 대학교를 가든 선택과 그 결과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아니, 나 아직 응애인데 이렇게 큰 책임을 외롭게 져야 한다고? 누군가가 가리키는 손가락에 기대고 싶었지만 누구도 그럴 순 없었다.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아, 이것이 어른의 맛이구나. 외롭고 무겁고 누군가에게 기대서 묻어갈 수 있을 거라 착각했던 자신에게 씁쓸하고.
무얼 선택하든 어떤 선택이나 가고자 하는 방향에 답이라는 틀을 끼워맞출 수 없다는 걸 안다. 알지만... 길을 헤매고 있거나 어떤 하루가 버거울 정도로 외롭고 무거울 땐 차라리 삶이 시험 문제 같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야 만다. 혼자 공부하고 혼자 풀고 혼자 맞히고 혼자 틀리고 왜 틀렸는지 반추하고. 내 한계를 파악할 수 있고 어떤 선을 넘어야 하는지 명확한, 단순한 알고리즘 말이다.
답을 찾다가 길을 잃고 답답해져버린 스스로를 설득하는 밤이 잦았던 해였다. 그치만 새해에 이미 내 선택에 따를 결과를 알고 있었다. 이제 연말이 되었고 돌이켜보니 바로 그대로 실현이 되었다. 연말을 맞아 이런 반추를 하는 것은 그 선택이 오롯이 나만의 판단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선택을 할 때 누군가의 얼굴을, 목소리를 떠올렸고 조금은 떠밀리듯 결정했다. 그래서 괜히 뭔가를 탓하고 싶나보다.
‘답을 찾지 못한 날’은 윤하 노래 제목이다. 이 노래를 불렀던 윤하는 ‘사건의 지평선’이 역주행하며 요즘 음원 차트 1위에 떡하니 올라 있다. 인생에 ‘답’이 없다는 살아있는 증거다. ‘사건의 지평선’을 연말에 많이 듣고 내년엔 나도 윤하처럼 지평선 너머로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