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8일 22시 01분
커피와 음악을 잘 아는 친구가 어느날 내게 노래를 소개해주다가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을 들어보라 권했다. 본인은 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노래들을 토대로 취향을 넓혀갔다고 했다. 토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던 유희열의 라디오 진행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전축 버튼을 이리저리 돌리던 라디오 키드였지만 지방에서는 FM 4U 주파수가 잘 안 잡혔기에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음악도시'를 몰랐다는 점에 대기 좋은 구실이다. '라천'은 2008년 4월21일부터 2011년 11월6일까지 했으니까 내가 이 프로그램을 처음 들었던 건 아마 그 사이일 것이다. 쓰다 보니 어렴풋이 2010년 봄부터 들었던 것 같다. 그해 생일 연인은 내게 자그마한 흰색 소니 라디오를 선물했다.
대학교 4학년. 어떤 걸 결정해도 삶의 한 순간을 가를 것 같다는 섣부름에 오지 않은 두려움으로 휩싸였던 시기였다. 도무지 내가 읽고 쓰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 외에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판가름나지 않아 답답했다. 그때 오랜만에 라디오를 틀었다. 친구가 추천했던 프로그램이 뭐였더라, 지지직 거리는 주파수를 더듬다 뚜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희열이었다.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잠이 많은 나는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간까지 대체로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보통은 새벽 1시 혹은 1시30분까지 들었던 듯하다. 사람들의 일상, 유희열의 농담, 게스트들의 폭넓고 깊은 이야기, 언제고 탁월했던 선곡. 무엇보다 깊은 밤 누구도 차마 깨우지 못하는 시간 내게 말걸어준 유일한 사람, 혹은 사람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 스스로에게 지친 밤, 무엇도 말하지 않아도 곁에서 조근조근 말하는 '라천'을 들으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받았다. 홀로 지내는 방을 채우는 사람 목소리가 필요할 때 '라천'을 켰다.
'라천'은 내게 용기와 위안을 줬다. 지나치게 다정하거나 느끼하게 말 거는 게 아니라 소소한 유머와 흐르는 노래들로 전해지는 '괜찮아.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라는 메시지는 그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결코 작지 않은 힘이었다. 디제이 유희열이 어느 날에는 청취자들에게 벌떡 일어나 만세 삼창을 하라는 주문을 했다. 도둑 고양이의 눈만 밝은 야심한 밤 침대에 대뜸 올라가 만세를 외쳤다. 거듭되는 좌절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막막함 속에서 만세를 외치고 혼자 웃다가 울었다. 공중에 대고 한 유희열의 주문을 이렇게나 잘 따라하는 청취자라니, 깊은 밤 떨리는 목소리로 만세 삼창을 할 줄이야. 그러면서도 명치서부터 꿈틀대는 어떤 뜨거움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조금 울었던 것 같다.
마지막 방송날.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인 SBS '연애시대' OST 손예진의 '고마워'가 흘러나왔다. 좋아했고 추억이 많던 음식점 '오리엔탈 브런치'가 없어졌을 때도 그랬다. 왜 좋아하는 것들은 이리도 내 곁에서 사라지고 말까. 켜켜이 쌓인 시간이 단숨에 어딘가로 빨려들어 자취를 감추지는 않을까 속상했다. 이젠 기억을 끄집어내야만 느낄 수가 있겠구나, 기억력이 안 좋은 내가 혹시나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어두운 밤 길을 잃었을 때 누구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나. 철들지 말고 있으라는 유희열의 말에 그건 정말 자신있는데 하면서. 방송이 끝나고 한참을 지나서까지 울었다.
2013년 8월21일 유희열을 면대면으로 처음 봤다. 부담스럽지 않은 다독임과 간결한 웃음으로 대학교 말년과 졸업 후 취업 준비 시기를 달래준 그를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수많은 취재진이 있었고 그곳은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다. 그리고 지난 6일 또 한 번 유희열을 만났다. tvN 'SNL 코리아'의 '위켄드 업데이트'를 진행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꼭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라디오는 다시 안 하시나요?' 유희열은 그런 질문은 라디오를 좋아하셨던 많은 분들께 받는다고, 라디오는 돌아가야 할 곳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답했다. 유희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타자를 쳤다. 인터뷰 내내 유희열은 질문자를 바라보며 답했다. 그렇게 그 자리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