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 인플루엔셜(2024)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말하기의 힘'을 주제로 하는 인문 자기 계발서(?).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많은 대화법 같은 화술 콘텐츠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함의와 정서를 되짚고, 이를 토대로 '국어' 사용자 다시 말해 우리의 태도를 살펴본다. 특히 지금 여기에서 국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정서를 보여준다. 제목대로 국어 '감수성'을 다뤘다. 요즘 사람들의 발화 에티켓을 익힐 수 있다.
굳이 국어라고 쓴 건 이 책의 정서를 표현하고 싶어서다. 현재 이곳에서 단일 공용어로 문화와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사회 집단, 즉 한국의 '국민'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습관성 '아니' 사용, 호칭 문제, 나이 문화와 존댓말. 사회 현상을 국어라는 낚싯줄로 포착해 놓았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니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다. 언어를 포함해 각종 분야의 감수성은 어느 정도 상식 혹은 에티켓이 된 듯하다. 이를 새삼스레 체감할 때마다 뜻을 함께한 친구들과 감수성을 벼리려고 노력했던 게 좀 빨랐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 동안 '병신 쓰지 말아요' 캠페인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15년도 더 전에 대학교 과방에서 장애인 비하의 의미를 담은 욕설 '병신'을 쓰지 말자고 캠페인을 했다. 잘 안 됐다. 더군다나 익명의 누군가가 과방 벽에 붙인 표어 중 '말아'를 떼는 테러를 해 '병신 쓰지 요'라고 조롱당하기도 했다. (이런 건 왜 요즘과 기시감이..)
기자로 취업하고 나서는 후배들에게 막 대하는 게 어려워 존댓말을 썼다. 부장한테 '네가 언제까지 존댓말 쓸 수 있을 것 같냐'라고 혼났다. 부장 그리고 사장에게도 '님'을 붙이지 않고 입사 순서를 따르는 엄격한 서열 문화에서 내 감수성은 무시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땐 육류를 먹지 않는 페스코였는데 그걸 알고 일부러 고깃집 회식을 진행한 부장도 있었으니, 뭐.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고, 대학 친구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이들과 사회 생활하며 현실에 두 손 두 발 든 순간들을 지나왔다. 감수성이 닳고 해졌다는 의미다. 대학생 때 이른 감이 있었다면, 이젠 부리나케 쫓아가야 한다. <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을 읽으며 '당연한 얘기군' 하고 페이지들을 지나쳤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하.
이렇게 한국어의 상대 높임법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존중해 주고자 쓴 존댓말이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태도로 해석될 수도 있고, 친근함을 드러내고자 쓴 반말이 무시하는 태도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상대가 실현한 높임법에 집중해서 자신을 어떻게 대우하는가에 신경을 쓰느라 말의 내용을 놓치는 일이 흔히 일어나기도 한다. (321쪽)
닭과 달걀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듯이 언어와 사회는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높임법이 발달한 한국어는 나이 문화의 원인인가? 혹은 결과물인가?
언어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생각하면 인류의 기원을 상상할 때처럼 알 수 없는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이다. 우리는 과연 언어를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언어에 기반한 사고방식으로 사회화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