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을 여행하던 단테는 지옥을 ‘공간’이 아니라,
죄와 상황이 만들어내는 고통의 연속으로 그리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그를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행동과 그 결과들이 한 사람을 끝없이 괴롭히는 지옥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직장인으로 보게 되니 더욱 와 닿는다.
내가 하기에 따라 이곳은 지옥이기도 천국이기도 하니까.
안 힘들겠냐고
투자 미팅이 연달아 취소되고, 프로덕트 일정은 매주 뒤집히고, 밤샘 회의 및 주말 출근은 옵션
팀원과 사소하게 부딪히는 일도 오지게 많다.
그런데 이게 공간 때문이 아니라 상황 때문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마치 지옥처럼.
대기업과 비교하면 더 실감 나기 마련이다.
대기업에선 문제 발생하면 담당 부서가 있고, 프로세스가 정해져 있어서 최소한 누군가가 책임을 지겠지라는 책임자에 기대는 안도감이라도 있는데, 스타트업은 오로지 내 몫이다.
투자 실패하면 대표와 같이 난리 부르스,
일정 밀리면 기획부터 디자인, 개발까지 다 다 내 책임
심지어 누구 하나 쉬어도 네 업무가 뒤집히고 억장도 뒤집힌다.
게다가 연봉, 복지, 안정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
대기업 동료들은 월급날 통장만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데,
우리는 다음 달 급여가 밀릴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현실
스타트업의 지옥은 회사라는 공간 때문이 아니라,
모든 책임이 네 어깨에 올라와 있고,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 해내야 하고, 그 안에서 배우고 버텨야 한다는 압박감.
그게 진짜 지옥이지.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단테가 지옥의 층마다 교훈을 얻었듯, 우리도 업무 속에서 배우는 게 있다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무한 수정 요청에 지치더라도,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늘고, 문제 해결력이 향상되기 마련~! 마케팅 캠페인이 터무니없이 실패해도, 데이터 분석과 고객 이해도가 쌓이기 마련~!
지옥 같은 상황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통제권에 집중하는게 핵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타트업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랄까)
오늘은 이 회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이번 실수에서 배우자 같은 어찌보면 단순한 선택과 집중이 지옥을 견디게 하고, 언젠가는 성장의 발판이 되는 것 같다.
스타트업에서 살아남는 건 완벽한 계획이나 천재적 스킬 때문은 절대 아니다.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작은 천국을 만들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상황을 통찰하는 힘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나는 스타트업 지옥의 한 층을 지나며
내 선택과 행동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내일 또 다른 층을 올라갈 준비를.. 하자..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길이야말로 진짜 내 안의 작은 천국이다.
(이상 스타트업 다니는 무교의 데일리 통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