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대표를 물들인 '빠더너스차원이달라병'
벌써 1년 10개월 전 일이다.
옥외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 마케터 면접을 보러 갔는데, 사무실이 아닌 카페에서 보자고 하더라.
스타트업,중소기업을 믿고 거를 수 있는 첫 번째 시그널인 ‘회사 밖 면접’이란 특징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구직이 급했던 터라 약간 망설이다 시간에 맞춰 프렌차이즈 카페로 나갔다.
마주 앉은 CEO는 흔히 말하는 명문대 - 여의도,종로 금융가 루트를 밟아온 사람이었다.
'주어진 길만 따라오다 보니 내가 원하는 걸 찾고자 창업했다'던데,
이 말은 어디 창업 학원에서 알려주는 멘트인가?
이 말을 안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어..
1시간 반 동안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묘한 불쾌감이 스멀스멀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들이 이미 결혼하고, 집 사고, 투자 대박을 터뜨려 은퇴하고 있는 걸 보며 '난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내 앞에서 토로했다. (나한테 너네 회사를 어필해야지 우는 소리는 대체 왜 하는거야)
저딴 열등감보다 가장 싫었던 포인트는 정작 자신의 비즈니스 아이템이나 광고사업 이야기는 무관심했던거다. 오히려 갑자기 본인 망상을 나열하더니 '빠더너스 같은 회사' 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했다.
얼마 뒤 다른 스타트업 면접에서도 CEO가 또 빠더너스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한걸 듣고 그때 알았다.
놀면서 돈도 벌고 즐겁게 일하는 "빠더너스 병"이 스타트업 일대를 창궐했다는 사실을...
빠더너스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문상훈이 주도하는 기업이다. 법인세를 내고, 매출을 만들고, 근로계약서를 쓰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영리 추구 조직이다.
우리가 보는 건 웃고 떠드는 영상뿐이지만, 그 뒤엔 콘텐츠 방향을 정하고 협업 기업을 고르기 위한 수많은 논의와 계산이 있다.
백조가 물 위에선 우아해 보이지만 물밑에선 쉼 없이 발을 움직이듯, 빠더너스도 카메라 뒤에선 파다닥거릴 것이다.
"누군가의 일이 굉장히 쉬워 보인다면, 그는 그 일을 굉장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결국 그 스타트업에 취직했냐고?
당연히 No.
그 회사는 이후 2년 동안 피봇만 두 번 이상 했다. 스타트업 커뮤니티 채널에서 그 이름을 여러 번 보며, 회사명과 서비스가 자주 바뀌는 걸 확인했다.
빠더너스 같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나 '놀면서 돈 버는' 이미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표면적 풍경일 뿐이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결국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시장에 제시하며, 이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유지하는 데 있다.
내가 진짜 팔고 싶은 가치와, 그 가치를 위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노력,시간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하지 않다면, 어떤 회사 모델을 흉내 내더라도 금세 방향을 잃기 마련이다.
그리고 스타트업 대표님들
면접볼때 빠더너스 같은 회사 만들고 싶다는 말좀 그만하세요. 그거 병입니다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