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방법
엄마가 목련을 좋아했었나?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목련이 벚꽃보다 좋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자목련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벚꽃을 질 때 아름답지만, 목련은 어떤가? 뭐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가 보다. 지는 벚꽃은 흩날리고 아름답지만, 지는 목련은 툭 그냥 더 이상 버틸힘이 없다는 듯 툭 떨어진다. 떨어진다는 말이 진다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꽃.
자살유가족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고인의 삶을 마지막 장면으로만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인이 살아있을 때 있었던 행복하고 밝은 무언가가 분명 있긴 했었을 텐데, 그 기억은 사라지고 마지막 순간에 그 사람이 삶을 스스로 버렸다는 것으로 삶 전체가 비극으로 기억된다.
엄마가 행복했다고 마무리하기엔 그렇다면 왜 계속 살지 않았을까?를 되묻게 되고, 불행했다고 하기엔 너무 서글프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겠지 하기에는 다시금 왜 계속 살지 않았을까를 묻는다.
누군가가 죽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배운 적이 없었다. 당황스러움과 분노, 죄책감, 슬픔을 어떻게 해석하고 처리하라고 누가 알려주지 않았다. 다 큰 어른들도 마치 이런 일은 처음인 양 갈팡질팡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경우에는 더더욱 아무것도 몰랐다.
예쁘게 기억하고 싶다. 비슷한 나이 대비 젊어 보이던 엄마. 보기 좋게 마른 몸, 단발머리. 웃을 때 빼곤 나와 닮지 않아 친구들이 엄마가 되게 예쁘시네, 너랑 다르다하곤 아빠 사진 보면 너는 아빠 닮았네 하던.
나는 엄마와 턱과 입이 닮았다. 나머진 아빠와 닮았다. 나랑 달리 오똑한 코, 짙은 쌍꺼풀. 나랑 닮은 웃상도 울상도 아닌 입매, 약간 각진 좁지도 넓지도 않은 턱.
체형이 닮았다. 중학교 때 이미 엄마 몰래 엄마 옷을 입고 나갈 수 있었다. 친구들이 이상하거나 의아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촌스럽지 않은 옷과 악세서리들. 아직도 쓴다.
대학이 내게 왜 중요한지 알려줬던 사람, 내게 사회계층 상승의 욕구를 가져야한다고 알려 준 사람. 시트 온도조절이 되는 지인 차를 얻어 타며 신기해하니,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고 했던 사람.
엄마가 바라던 무언가가 되진 않았다, 엄마는 무언가가 되라고 하지 않았거든. 그저 대학이 중요하다고 알려주었고,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안 듣고, 중학교 때 밖으로 나돌고 화장을 즐기고 치마를 줄이기 시작하며, 집에 늦게 들어오고, 밤에 몰래 나가기 시작하자, 없는 돈을 주변에 빌려 멀쩡한 아파트를 구해 나를 데리고 둘이 살기 시작했다.
요리는 잘 못했고, 그나마 간장 떡볶이는 맛있게 잘 만들던 사람. 집에서 가끔 월남쌈을 직접 만들어 먹던 사람. 조리 말고 요리는 잘 못했으므로 떠오르는 다른 요리는 없다.
죽기 전에 갚아야 할 돈과 돌려줘야 하는 돈들을 인출해서 뽑아두고 메모를 남긴 사람. 돌려줘야 하는 짐들을 싸둔 사람. 죽기 전에 와인 반잔을 마신 사람. 내가 보기 전 정리해 달라고 11년 전 이혼한 남편에게 문자를 남긴 사람. 아쉽게도 문자는 전송되지 않았다.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 남은 사진이 별로 없다.
후회하지 않았길, 무가 되든 다른 곳에서 그리워하던 사람과 만났든 원하는 대로 되었길.
예쁘게 기억하고싶다. 잘되지 않아서 대체로 기억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어쩌다 목련꽃 피는 밤에 우린 마주쳤을까
피려고 여기까지 온 목련을 지고
버스는 덜렁덜렁 떨어진 목련 꽃송이 태우고 간다
나는 하나 둘 셋 세월을 세다가 그만둔다
넷 다섯 여섯 방향을 세다가 그만둔다
…(중략)…
통증을 알아버린 인형이 목련나무 아래 버려져 있다
당신을 생각하면 힘들고 슬퍼요, 나무 뒤에 숨은
복화술사의 목소리가 휘파람 같다
정확한 버스 노선을 따라가는 당신 뒤에서
이해할 수 없는 꽃송이들, 눈송이들, 흰 주먹들이 떨어진다
어떻게 녹아내려야 하고 멈춰야 하고
사라져야 하는가
어떻게 이별하고 잊어야하고 퇴장해야 하는지
계속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다
- '미행' 중에서, 박서영,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문학동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