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 자락
차분한 소비- 2024.9.14.
8월 15일이면 대구 더위는 거의 끝자락이다. '광복절'이 오면 '더위'도 해방이다.
올해는 아니다. 산으로 빼앵 둘러싸인 분지, 대구는 열기가 시원하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신천에 물이 철철 흐르고 나무가 무성해져서 예전보다 덜하지만 습도 높은 대구 더위는 견디기 힘들다.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서울이나 부산)에서 돌아와 동대구역에 내리면 코 끝으로 더운 김이 훅 들어찬다. 숨이 턱 막힌다. '아, 집에 왔구나...' 타지와는 다른 고온다습을 몸이 날쌔게 알아챈다.
그래도 이맘때 추석이면 쨍하던 태양이 슬몃 힘이 빠지고 하늘도 낮아진다. 흐려진다. 그러면 '올여름도 무사히 넘겼구나...'라며 안도한다. 여름 위세를 감당하느라 묵혀두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오늘도 덥다... 하늘이 낮아지고 흐려질 기미가 없다. 6월부터 시작된 더위가 9월까지 물러가지 않고 기승을 부린다. 9월 10일, 오후에 습도가 높아 에어컨을 켰고 추석 연휴가 시작된 토요일 14일, 아침 9시부터 에어컨을 켜고 집 청소를 시작했다. 9월에도 에어컨을 틀어대는 건 오십 평생 처음이다. 더위가 넉 달 동안 계속되면 동남아기후라고 봐야 되지 않을까?
더위가 극심하니 이게 환경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칠레 아카다마사막에 무더기로 쌓인 옷무덤이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기사에 가슴이 뜨끔하다. 선지식들이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많이 먹고 싶고, 모양 나게 입고 싶고, 왕창 쓰고 싶은 사람이라서 실천이 어럽다. 꼭 필요한 물건만 사면 좋겠지만 어느 날은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충동구매를 하고 때때로 예뻐서 사들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마음으로 물건을 쟁여놓기도 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저런 옷무덤이 생겼구나... 내 옷들도 저기 어디에 있겠지.... 소득이 늘고 잘 살게 되어 어릴 적 보다 좋은 옷, 이쁜 물건을 많이 사게 된다. 근사한 차림새를 하고 싶어 여기저기 옷구경을 하고 가방, 신발을 사고 은근히 옆사람과 비교해 가면서 더 고운 물건을 찾기도 한다.
이제는 쓰임에 꼭 맞는 적당한 물건을 잘 생각해서 사야 될 성싶다. 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즐겨 입었는데 끝나지 않는 여름 날씨에 반팔옷이 필요했다. 적당한 옷을 찾고 오래오래 생각했다. 나에게 꼭 필요한가? 지금 기분이 들떠서 사는 건 아닌가? 2장을 사서 쟁여놓고 싶은 걸 1장만 구입했다. 더위 핑계로 다시 쇼핑할 구실을 찾은 건지도 모르겠다.
자꾸자꾸 사고 싶은 마음 아래에는 뭐가 있을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내면의 문제들, 공허나 우울, 불안을 소비로 해소하고 싶은 걸까? 소박하고 적절한 소비는 언제 가능하려나... 징글징글한 9월 더위속에서 실천 없는 무력한 상념을 펼친다.
달님 달님 보름달님
조금 덜 쓰고 조금 덜 먹게 해 주소서
후손들이 쓸 게 없다고 하네요...
2024년 9월 14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