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혼자였습니다. 아들은 일본여행을 가고 남편은 출근을 했어요.
낮잠을 길게 자고 일어났습니다. 밥에 물을 부어 삶아 먹었습니다. 잠도 많이 잤고 배도 불러서 아이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노래나 들어볼까 하고 음악을 틀었습니다.
하동균의 '그녀를 사랑해줘요'를 한참 듣다가 목청껏 따라 불렀습니다.
심규선의 '부디'도 흥얼거렸습니다.
밖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었습니다. 휙 휘익, 바람이 펄럭거리며 울었습니다. 배기후드에 바람이 들어왔다가 쿵하고 머리를 박고 빠져나갑니다. 느릿한 겨울 햇살이 노랗게 거실 바닥을 데우고 있습니다. 강아지가 배를 깔고 코를 골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흥이 돋아집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흐릅니다. 온전하게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후회나 원망이나 불안은 없습니다. 그냥 시간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순간은 얼마나 귀중한지요...
나에게 온 시간은 생존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가족에게도 주어야 합니다. 주변 지인과 친구에게도 나누어야 합니다. 그들은 나만큼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입니다.
우울하고 무력한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느끼는 감각과 감정들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힘들었습니다. 감정과 감각을 알지 못하니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몸이 느끼는 감각을 해석할 수 없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기 어려웠습니다.
내 안에 숨어있던 감정은 모호하고 흐릿한 안개덩어리 같았습니다. 얼굴에, 몸에 축축함이 배어드는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축축하다고 느껴야 할지 그냥 조금 서늘하다고 해야 할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내 마음, 내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힘이 있는 이가 보여준 감정, 누군가가 느낀 감각만이 진짜 같았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각은 현실이 아니고 저 멀리 있는 가상세계 같았습니다. 내 감각과 감정을 믿지 못하면 존재가 없는 것 같습니다. 흐릿해집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가슴에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켜켜이 쌓였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기어 나왔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공부를 하러 가면 좋은 스승님을 만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울분에 차서 너를 기도하게 해주는 이도 있었습니다. 느리지만 매일매일 잊지 않게 감정을 살피고 안아주었습니다. 이젠 괜찮겠지 하는 순간 다시 안개가 몸을 둘러싸곤 했습니다. 그 과정을 오래동안반복했습니다.
힘든 시간을 버텨낸 후 받은 선물은 오늘 같은 시간입니다.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시간을 즐깁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끼어들지 않습니다. 세찬 겨울바람에 따뜻한 햇살이 소종함을 느낍니다. 뜨끈한 쌀밥에 말린 취나물을 비벼 국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빕니다. 고소하고 향극한 향이 몸으로 들어옵니다. 호호 불어 먹으면 가슴까지 든든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올 해는 더 행복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