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설계를 끝내고 나서다. 졸업설계와 도시계획기사를 함께 준비했던 나는 졸업설계도, 도시계획기사도 들인 시간에 비해 크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지금이야 그때 힘들었다 정도이지만 그때 내가 겪은 좌절감은 꽤 컸다. 궤도의 삶을 충실히 따라왔는데 거듭 실패만 하는 것 같았고 계속 이럴 거라면 하고 싶은 일이라도 하면서 실패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졸업 전 마지막 방학은 내가 정말 배우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맘껏 하면서 보내는 대신 스스로 책임을 지며 살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나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바 2개를 병행하며 프리터처럼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와중에 낭만이 가득해 좋아하는 메뉴를 파는 곳에만 원서를 넣어 명동의 한 인도카레 레스토랑, 용산의 크림치즈음료를 만드는 카페에서 알바를 했다. 화,목 저녁, 주말 3시-10시 반까지 일하며 총 70만원 정도의 돈을 벌었다. 남는 시간에는 한강역사해설사 수업을 듣고 미싱을 배우며 내 기술을 가지리라 생각했다. 동네에 대해 뭔가 하고 싶었던 나는 친구와 로컬매거진을 만들겠다며 서울의 많은 동네들을 답사하고 다녔다.
그렇게 한강역사해설사 수업을 듣고, 마음 맞는 글을 쓰며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을 가지자고 서로를 독려하고, 손재주도 없으면서 열심히 미싱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까.
지금도, 그때도 나는 머리로 결심한 것을 바로 추진하고 바로 실행한다. 조급하게 실행하는 만큼 후회를 하는 경우도 많다. 알바를 하면서 몸이 힘든 것은 익숙해져 갔지만 불안정한 생활과 그로 인한 불안감은 견디기 힘들었다. 앞으로 쭉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알바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은 불안감 앞에서 계속 작아졌다. 4평쯤 되는 자취방의 월세 40만원을 내기 위해 알바를 두 개나 하고 있음에도 70만원 정도밖에 벌지 않았기 때문에 돈은 늘 부족했다.
그때 쓴 일기에는 내가 느꼈던 당혹스러움, 허탈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지내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요즘 내 일상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케렌시아만 가득한 세상이 이런 걸까. 정해진 일들, 알바 같이 내가 계획한 것들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어찌어찌 하면서 다른 것들을 잘 못하고 있어서 그게 안타깝다. 그렇다고 그런 일들을 했을 때 내가 막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늘 가지지 못한 것을 갈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나만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원했고 그걸 얻었지만 잘 모르겠다. 다신 올 수 없는 시간인 만큼 정말 아침일찍 일어나고 알차게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걸까 싶기도 하다.
정말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은 문제구나. 그리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누군가와 여유 있게 맛있는 것을 먹고 이런 시간이 없으니 사람이 점점 각박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무 일이나 내 일이 되서 하고 싶다. 싫지 않은 일이라면 나는 그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잘 살아갈 것 같다. 지굼의 나는 막막하기도 하고 너무 힘들다...
어쩌면 다른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하고 스펙을 쌓던 시간에 나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내 인생계획이 조금씩 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때의 경험으로 나에게 무한한 자유가 주어져도 그걸 불안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5년이 넘도록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잠깐이지만 일탈의 경험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이때의 경험이 참 소중하다.
나의 프리터 생활은 2달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불안했던 내가 선택한 건 어느 스타트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