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의 공대 복수전공 도전기
중문과였던 내가 공대로 간 것을 두고 용기가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본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때의 무모한 나를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넘기곤 했지만, 사실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맹자며, 공자며 어렵고 두꺼운 책을 강독하는 중국어문학과 수업은 도무지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학점이 안 좋았다는 얘기다) 마침 다니던 대학은 복수전공이 필수였다.
처음 생각한 것은 사회복지학과였다. 1학년 때부터 활동하던 봉사동아리 영향이었다. 주기적으로 지역사회복지관을 다니며 사회복지의 영역은 단지 돌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앞으로 이 분야를 더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었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고 들었다.
다음으로 떠오른 선택지는 도시계획부동산학과였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2015년 즈음은 도시재생이 한창 주목받던 시기였다.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라는 개념에 마음이 확 당긴 나는 수업도 제쳐두고 도서관 300번대(사회과학)와 600번대(건축·도시공학) 서가를 오가며 관련 책들만 오래도록 읽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사회과학대학 소속이지만 문과인 도시계획부동산학과라면 나와 잘 맞을 것 같았다.
한 학기에 두 개 학과까지 지원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도시계획부동산학과와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했고, 두 곳 모두 떨어졌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학과 모두 복수전공을 하려면 학점이 꽤 높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 뒤, 나는 도시공학과에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이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당시의 그 선택이 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내 인생의 방향을 확 틀어놓은, 아주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럴 때 문이 닫히면서 열린다는 말을 더욱 믿게 된다.
인생의 문이 닫힐 때 그 앞에 너무 오래 서 있지 말라.
문이 닫힐 때 나머지 세상이 열린다.
닫힌 문을 두드리기를 멈추고 돌아서면
넓은 인생이 우리 영혼 앞에 활짝 열린다.
파커 J.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을 때, 중문과이기도 한 나는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가기 전 어머니와 밤 늦게까지 대화하던 순간이 선하다. 늘 모험을 감행하는 건 나고,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건 어머니였는데 그 때는 내가 감행한 도전에 스스로 걱정하고 두려워했고 어머니가 차분하게 위로를 해주었다. 너에게 좋은 쪽으로 풀릴 거라고, 어린 아이일 때부터 수학과 과학 쪽도 재밌어하는 아이였다고. 그렇게 중국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본격적으로 도시공학과에서의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3학년 2학기부터 시작한 전공이니 결코 빠른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커리큘럼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오히려 이곳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뿐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들을 연결하는 도시를 만드는 일 말이다.
그렇게 문과생이었던 나는, 친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문송합니다”를 외치며 놀리던 짓궂은 도시공학과 친구들과 도시공학과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