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다른 언어,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
“너는 참 많이도 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은 눈물이었다.
걷기 시작했던 첫 일주일 내내 그녀는 울었다.
그녀가 말하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는 후기는 많이 읽었지만 모두 완주한 사람들만 글을 썼던 것이라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이 길 위에서 다친 사람, 포기한 사람, 싫증 낸 사람들은 그저 한국으로 돌아가 일상으로 돌아갔으리라, 실패와 포기에 대한 글은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그래서 이 길은 좋다는 사람만 남아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험난한 겨울 순례길 위에서 우리는 종종 여러 이유로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하곤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의미부여는 성취한 소수의 권한이었을까? 결국 목표를 이룬 사람, 이 길 위에 무언가 찾았다는 사람만이 우리에게 보였다. 정작 이곳에 현실과 고됨은 어디에 기록됐을까, 나 또한 성취에 취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이에게 걸어보라 건네기엔 그 말에 책임져야 할 무게가 다소 무거웠다는 걸 알아야 했다. 실제로 이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우리가 떠올리는 이상은 실제로 우리를 위한 것이 맞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성공하고 싶어, 돈도 많이 벌고 싶어, 행복하게도 살고 싶어. 우리가 노출되어 온 것은 성취 한 잔에 취한 누군가의 성공담, 그러나 자극적인 이야기 속 그 길의 실패와 고됨은 모두 설명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그 모든 목표는 편하고자 한 내 마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 주길 바라는 내 욕심에서, 편하게 행복하고 싶은 내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떤 과정이든 힘들지 않을 것은 없을 것인데, 왜 힘들까 고민하는 것 또한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순례길의 본래 의미는 고행이고 고생스런 길, 비록 마지막 순간의 그 성취가 달아 보였더라도 가야 할 길은 쓰다. 우리는 달콤한 1퍼센트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쓰디쓴 99퍼센트 길을 걸어내는 모든 시간이 순례길이라 정의할 수 있었다.
“힘들어.”
우리는 같이 걸으면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힘들다는 이 한 단어에서조차 우리가 쓰고 있는 정도가 다름을, 우리는 걷는 중에 알게 됐다.
내게 힘들다는 문장은 일상어와 같았다. 조금만 힘들어도 내뱉어도 되는 가벼운 무게를 갖는다. 그래서 조금만 힘들어도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문장이자 누구나 다 힘들게 산다는 평소 생각으로 그 의미를 희미하게 지우곤 했다. 내게 있어 힘들고서 견뎌내 가는 시간은 오히려 노력, 성실이란 단어로 덮어내는 긍정적인 신호였을 거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힘들다는 단어를 참아낸 모든 과정의 끝에서야 꺼내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힘들다는 문장은, ‘진짜, 정말, 너무나도 힘들어서 더는 걷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했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평소에 참을성, 인내, 근성 이런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함께 걷는 동안 서로의 단어가 달리 쓰이는 걸 알아차릴 때까지 서로를 오해했다.
“힘들다는데, 왜 계속 가자는 걸까?”
내게 그녀는 더 걸을 수 있어도 안 걷는 사람, 그녀는 내가 힘들어도 걸으라 강요하는 사람이 돼있었다. 그래서 서로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상한 상황이 종종 연출되곤 했다. 그녀는 표현했고, 나는 수긍했다. 그러나 이해가 달랐다.
두 사람의 언어 무게추를 조정하는 데 까지, 다소 섬세한 그 정도를 가늠하기까지, 우리는 대화가 필요했다.
사람마다 쓰는 언어의 무게 추를 맞추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 내가 확인하는 것은 지속해서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중이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은 너와 내가 다르다는 걸 이해할 때마다, 우리가 노력 중인 걸 알게 되어 조금 기뻤던 순간도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을 때, 기대되면서도 슬픈 순간들이 있다. 기억으로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과거를, 다시 찾아주는 기록들이 있다. 과거의 사진첩을 올려보며, 그때 걸었던 길을 기다리곤 했다. 그러다 딱- 그 길을 마주한 순간이면 신기했지만 조금 울적해지곤 했다.
“낡았구나.”
왜냐하면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길에서 변해버린 단면들을 찾아냈을 때, 그간 흘렀던 시간 속 낡아진 나를 발견하기도 했으니까. 떨어져 버린 순례길의 상징 노란 화살표, 잠깐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간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훌쩍 지금인 미래로 시간이 툭- 하고 흘러버린 듯한 허무하면서도 슬픈 감정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5년이니 강이나 산 중 하나는 바뀌었겠네- 시답지도 않은 심심한 농담을 뱉으며 이 길을 지났다. 아마도 그 쓸쓸한 마음을 눌러내고 싶어, 헛웃음으로 덮어 지났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 번 본 영화는 다시는 보지 않았다. 여행도 그랬다. 한 번 갔던 여행지는 다시는 찾지 않을 요량으로 그곳들을 떠난다. 그러나 다시 오지 않았을 이곳을 나는 다시 왔고, 그녀가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이 여행은 나를 위한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세계가 확장되길 원했던 이 여행의 시작은, 어쩌면 내 여행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재미있는 여행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