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만난 인연은 귀하다.

by 조유일

프랑스 파리를 떠나 기차를 타고 경유 도시 바욘에 도착했다. 의도는 아니었지만, 바욘에서 며칠을 더 쉬었다. 당시 파업으로 인해 기차운행이 취소되어 생장으로 바로 출발하지도 못했고,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배낭을 덜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우체국을 통해 마지막 산티아고 성당까지 보내야 했는데, 생장에서 보내도 되었으나 겨울이라 변수가 많아 이곳에서 처리해야 했다. ‘동키서비스’라 하여 매일 짐을 다음 숙소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있는데, 역시 겨울이라 서비스를 안 했다.


겨울, 겨울, 겨울. 겨울이란 계절과 산티아고 순례길은 잘 맞지 않았다. 게다가 스페인 겨울은 비가 오는 우기라서, 걷기가 더 안 좋은 계절임은 분명했다.


우리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에 위치한 한인 편의점으로 연락하여 택배를 보냈다. 출발 전부터 골머리를 앓았던 짐과의 싸움이 끝나 후련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끝까지, 더욱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숙제였던 걸 그때는 몰랐다.






겨울 순례길에서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모든 게 다 귀한 게, 겨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식당은 물론 숙소와 마실 물조차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걷는 사람이 적어 모든 게 닫혀있는 길은, 다시 불편한 순례길을 만들어 걷는 사람을 더 드물게 만든다. 우리의 걸음이 느려 반드시 뒤에서 걷던 순례자들이 우리를 지나가야 할 텐데, 종일 한 사람도 만난 적 없던 날들이 있던 걸 보면 역시 사람 만나기 참 어려웠던 계절이었다.

5년 전, 나의 첫 번째 순례길이었던 그때 계절은 봄, 4월이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걷기 좋은 날이라 사람이 많아지는 시기였는데, 밤늦게 도착했던 최대 200명 수용이 가능한 알베르게(*순례길 위 다인실 숙소)에서 내 침대번호가 190번대였으니 할 말 다했지. 이번 순례길에서는 늦게 도착한 내 침대 번호는 20번쯤 되었다.

사람이 많았던 나의 첫 번째 순례길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사람이 없는 지금의 겨울 순례길은 섭섭하기도 했다. 길 위에서 모두가 같은 목표로 향해 걷는 동료애가 있어, 숙소에서 만난 순례자들과 쉽게 친해지는 이곳만의 문화가 있다. 순례길 위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문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누구는 ‘귀하다’ 말하더라.

겨울 길 위에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귀하게 느껴진다고.

군대를 전역하고서 순례길로 도전하던 20대 어린 친구들이 있었고, 4번째 순례길을 걷는다던 누나도 만났다. 한 번은 녹슨 자전거를 타고 순례길을 종주 중인 폴란드인 할아버지셨는데, 물을 달라하셔서 드렸더니 고맙다며 가루 파스를 우리 발에 뿌려주셨다. 덕분에 하얀 가루가 우리 발과 신발에 흩날렸지만 재미있다며 함께 웃었다.

순례길을 여행하며 차를 타고 숙식을 해결하던 독일인 아저씨는 우연히 4번이나 마주치면서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또 보겠지 싶었다가, 다시 만나지 못해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차타고 순례중인 아저씨와 3번째 만났을 때

굳이 경로를 틀어 우리를 관광지까지 내려다 준 낭만 있던 버스 아저씨, 휴업 중인 알베르게 주인은 쉬고 가라며 커피 한 잔을 내려주었다. 우리는 잊고 있을 뿐이지, 또 흘려 지나갔을 뿐이지 한 사람 한 사람 귀한 인연이었던 걸, 우리는 겨울이 돼서야 그들의 존재를 마음속 깊이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지금,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우리 주위에 있을까,

그리고 얼마일까, 그들의 소중함 느끼는 순간은.

순례길에서 만난 한국인 누나가 알려준 맛있는 요거트를 우리는 매일 찾아다녔고, 우리에게 만들어준 토마토 스튜는 결국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틈만 나면 만들어 먹던 우리의 애정 가득한 요리가 되었던 건, 인연을 넘어 추억으로 녹아드는 아름다운 과정이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