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B 비자 전쟁과 테크 황제의 배신, 그리고 조용히 웃는 트럼프
머스크가 황제로 군림하던 ‘MAGA-엑스(구 트위터)’가 하루아침에 핏빛 온라인 콜로세움이 되었다.
최근 미국 정치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결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가 아니다. 엘론 머스크와 트럼프의 MAGA 지지자들 간의 충돌이야말로 로마 시절 콜로세움에 비견될 정도로 뜨거운 불길을 내뿜는다. 테슬라와 스페이스 X, 그리고 트위터(이제는 X)를 지배하는 테크 황제 머스크가 한때 자신을 ‘자유의 수호자’라 치켜세우던 MAGA 진영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계기는 H-1B 비자 문제다.
머스크는 “나는 H-1B 비자로 미국에 왔고, 그 덕분에 미국이 강해졌다”며, 이 제도에 반대하는 MAGA 지지자들에게 “얼마나 큰 전쟁을 벌일 수 있는지 상상도 못 할 것”이라고 폭언에 가깝게 외쳤다. MAGA 진영에게는 이것이 배신이나 다름없다. 과거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을 복원하고 언론 검열에 반대한 머스크를 환호했던 이들로서는, 머스크가 “동기부여가 부족한 미국 엔지니어보다 외국 인재가 낫다”는 취지로 말하자 분노가 폭발한다.
트럼프라면 이런 대형 스캔들을 놓칠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마라라고’나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머스크와 MAGA 지지자들 간의 전쟁을 구경하는 모습이다. MAGA의 핵심 가치는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며, 외국 노동자 유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번 충돌에서 입을 꽉 다문 채, 머스크가 스스로 이 전쟁을 치르게 내버려 두는 형국이다. 혹자는 트럼프가 “언젠가 본인이 유리한 순간이 오면 다시 등판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거센 폭풍의 중심에는 H-1B 비자가 자리한다. H-1B 비자는 미국 기업이 외국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비이민(Non-Immigrant) 비자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링, AI 연구 등 고도 전문직이 주요 대상이다. 연간 최대 6년까지 체류가 가능하고, 스폰서(고용주)가 요구하는 대로 임금을 받아야 한다. 법적으로는 지역 평균 임금(Prevailing Wage) 이상을 지급하도록 규정하지만, 편법 사례가 많다. 일부 기업은 직급을 낮게 책정하거나 계약서에 불투명한 임금 항목을 넣어, 사실상 저임금 노동력을 ‘합법적으로’ 활용한다.
머스크는 자신과 테슬라, 스페이스 X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를 바꿀 혁신을 만들어왔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 성공의 비결 중 하나가 ‘우수한 외국 인재 채용’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고급 인력이 실제로 합당한 대우를 받느냐, 그리고 이 제도가 마땅히 보호해야 할 미국 내 기술 인력의 기회를 빼앗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MAGA 지지자들이 머스크에게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H-1B 채용이 “미국 엔지니어가 받을 자리를 가로채고 임금을 하락시킨다”는 믿음이다. 실제로 60 Minutes를 비롯한 여러 보도에서, 해고된 미국 엔지니어가 자신의 후임자인 H-1B 직원에게 업무를 직접 교육해야 하는 굴욕적인 장면이 공개되었다.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지식을 전수한다. 왜냐하면 퇴직금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H-1B 노동자들도 희생양인 경우가 많다. 고용주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고, 그러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 고용주를 찾기도 쉽지 않다. 결국 H-1B 비자 소지자는 회사가 시키는 대로 밤낮없이 일할 수밖에 없다. 회사 측에서 “동기부여가 뛰어나다”라고 말하는 배경에는 이런 압박 구조가 깔려 있다. 즉, 외국 인재에게는 미국이라는 꿈이 걸려 있고, 기업은 그 ‘꿈’을 무기로 삼아 노동력을 극한까지 끌어다 쓴다.
이 충돌이 수면 위로 급부상한 계기는 로라 루머(Laura Loomer)가 트럼프 인사를 비판하면서부터다. 트럼프가 AI 정책 고문으로 임명한 시람 크리쉬난(Sriram Krishnan)이 H-1B 인력을 선호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MAGA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저버렸다”라고 격분한다. 머스크는 이에 대해 “미국 내에서 동기부여가 높은 인재를 찾기 어렵다”라고 반박하면서 동시에 이들을 비난한다. MAGA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온라인 황제였던 머스크가 갑자기 등을 돌리자 분노에 사로잡힌다.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라는 정치 신인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미국이 왜 ‘프롬퀸’과 ‘운동선수’만 치켜세우느냐”면서, 진짜 기술자를 우대하지 않는 문화가 문제라는 식의 발언을 한다. 90년대 하이틴 시트콤 ‘구세주와 벨(Saved by the Bell)’까지 들먹이며, “미국 인재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니 외국 인재를 쓰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펴지만, 대중 사이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아무튼 이 난장판은 “머스크는 H-1B를 통해 싼값에 노동자를 부려먹는 억만장자”라는 MAGA 진영의 비난과, “MAGA 지지자들은 시대착오적 이민 배척자”라는 머스크 측 반격이 뒤섞여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다.
머스크가 트위터(지금은 X)를 인수했을 때 가장 크게 내세운 기치가 ‘표현의 자유’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비판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로라 루머가 “머스크가 H-1B 문제에서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라고 말한 뒤, 결제 서비스와 계정 제한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MAGA 지지자 다수가 “머스크는 자기에게 불리한 글을 쓰면 무차별 차단한다”라고 외친다.
결국 머스크가 외치던 ‘자유’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한 발화권한을 ‘선택적’으로 부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진다. 한때 머스크를 지지했던 MAGA 지지자들이 오히려 “알렉스 존스(Alex Jones)의 음모론에 가까운 언행”이라며 조롱하는 모습이 펼쳐지니, 상황이 얼마나 역설적인지 알 수 있다.
미국의 H-1B 제도는 말 그대로 ‘고급 인재 확보’라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실제 운영 방식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테크 산업 속에서 기업들의 이윤 창출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이와 동시에 미국 내 교육 현장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역량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지역 간의 교육 기회가 다르고, 고등학교 단계에서부터 AP 컴퓨터 과학 같은 과목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덕분에 기업들은 “미국 인재가 부족하다”는 명분으로 H-1B 채용을 확대한다. 그런데 정작 MAGA 지지자들은 “그 덕에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고 임금이 하락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편 머스크처럼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는 입장에서는 “외국 인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국은 경쟁력에서 뒤처진다”는 논리를 편다. 양측 모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나, 실제 해법을 위해서는 ‘교육 혁신’과 ‘공정 임금 감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스크와 MAGA의 대립이 더욱 아이러니한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둘 다 “미국을 강하게 만들자”라고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미래 기술을 선도해야 미국이 살아남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미국인부터 보호해야 진정한 미국 우선주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뜻밖에도 모두가 간과하는 ‘교육’에 있을 수 있다.
미국이 AI, 로봇공학, 빅데이터 시대를 이끌려면 차세대 인재 양성이 필수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AP 과목 확대, STEM 장학금, 교사 연수 등을 통해 인재 풀을 넓히면, 굳이 무리해서 외국 인재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머스크가 필요로 하는 수준의 고급 인재가 국내에서 충분히 공급된다면, MAGA 입장에서도 노동시장 잠식이라는 불만이 줄어든다. 동시에, 이미 들어온 외국 인재들에게는 ‘공정한 임금’과 ‘합리적 체류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착취 구조를 막을 수 있다.
로마 시절, 황제들은 검투장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빵과 서커스를 제공해 민심을 달랬다. 머스크는 온라인 플랫폼 X에서 불꽃 튀는 서커스를 선보이고 있고, 트럼프는 마치 로마 황제 네로처럼 뒤에서 미소 지으며 지켜보는 듯한 모양새다. 트럼프가 평소라면 벌써 X에 복귀해 공격적 트윗을 날렸을 텐데, 왜 이번에는 잠잠할까?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트럼프가 “머스크 vs. MAGA” 구도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이 분쟁이 더 커져야만 나중에 본인이 ‘중재자’ 혹은 ‘구원투수’로 등장해 주목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보는 전략일 수 있다. 무엇이 정답이든, 지금은 트럼프가 골프채를 치켜들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H-1B 제도가 정착된 1990년 이래, 실리콘밸리의 많은 거대 기업들은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외국 인재를 꾸준히 받아들였다. 그 결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테슬라 등은 글로벌 수준의 혁신을 주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미국 엔지니어들이 “기업들은 싼값에, 이민자들은 비자 목줄을 잡아 저임금으로 부려먹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특히 72%가 인도 출신이라는 통계는 일부 인종차별적 시선을 유발하기도 한다. MAGA 성향의 지지자들은 이를 ‘인도 IT 노동자 침공’ 같은 극단적 표현으로 치환하기도 한다. 물론 이민자들이 실제로 저임금을 받으며 고용주에 종속되는 현실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결국 이들의 분노 뒤에는 “기업들이 최대 이윤을 위해 법과 제도의 빈틈을 활용한다”는 의심이 자리 잡는다.
이 치열한 대립 구도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두 가지다.
교육 혁신: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코딩, AI, 데이터 사이언스 등 실무적 역량을 길러주는 과목을 확대해, 미국 내 학생들이 고급 테크 직군에 도전할 기회를 넓힌다.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장학금, AP 과목 지원, 교사 급여 인상 등으로 학습 격차를 줄여야 한다.
임금 및 제도 감독 강화: H-1B 비자가 본래 취지대로 ‘전문 인력 고용’ 수단이 되도록, 기업들이 편법으로 낮은 임금을 책정하지 못하게 감시를 강화한다. 이민 관련 규정과 노동법을 제대로 이행하고, 편법 기업에 대한 제재를 늘려야 한다.
머스크와 MAGA 지지자들의 대결을 중재하려면, 결국 정치권이 “단순히 욕하기”가 아닌 “제도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분노와 조롱, 검투장의 함성만 난무하고 있다.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 X, 그리고 X(구 트위터)를 통해 ‘미래’를 개척하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트럼프는 한때 트위터에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한 인물이다. 이 둘이 함께할 때, MAGA 지지자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지금은 머스크가 “전쟁을 선포”하고, 트럼프는 골프장에 머문다. 마치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내부 권력 다툼으로 쇠락해 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미래 또한 열려 있다. 미국이 이민정책과 교육혁신을 동시에 추진해 새로운 로마로 거듭날지, 아니면 내부 갈등에 빠져 추락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머스크와 MAGA 간의 분쟁은 사실 테크 산업과 이민, 그리고 노동시장의 구조가 얽힌 복합적 문제를 상징한다. 거기에 정치 쇼맨십까지 가미되면서, 디지털 시대의 콜로세움이 완성된 셈이다.
결국 진짜 문제는 “누가 사자와 누가 기독교인(희생양)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느냐”이다. 외국 인재와 미국 노동자가 공존하고, 기업이 혁신을 추구하면서도 인권과 공정 임금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려면, 그 어떤 논쟁보다도 사실상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단순한 블록과 뱀, 계정 정지와 음모론이 답을 주지 않는다.
머스크가 “H-1B 비자를 늘리겠다”라고 선언하고, MAGA 지지자들은 “미국 일자리 뺏지 말라”고 외친다. 트럼프는 골프채를 든 채 침묵한다. 이 광경은 ‘새로운 로마’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로마제국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듯, 미국도 당장 몰락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부 갈등과 분열을 방치하면, 결국 언젠가는 붕괴로 이어지는 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빵과 서커스”가 아니라, 미래 인재 양성과 노동시장 공정성 보장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머스크와 MAGA 지지자들의 난투극 뒤에 감춰진 교육과 제도의 허점을 직시해야 한다. H-1B 비자, 테크 산업, 미국 이민 정책 모두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결국 로마를 일으킨 것도, 무너뜨린 것도 사람들이었다. 어느 쪽이 되든, 선택과 행동이 미래를 결정한다. 그리고 트럼프가 언제 다시 입을 열지, 그의 다음 행보 역시 예의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