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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0주기, 가만히 있지 않을 권리에 대하여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은 어느새 스물여덟 청년이 되었겠지요. 영정사진 속 아이의 미소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상상조차 어려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잊지 않겠다던 약속은 봄비 젖은 벚꽃처럼 시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더 뭘 해줘야 하냐는 질책의 목소리는 커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은 대다수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304명이 죽었는데 대체 무슨 이유로 책임자들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지, 피해자들과 국민은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을 물었는데 왜 검찰과 사법부는 불기소와 무죄판결로 정부의 책임을 묻어 버리는지 화가 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10년, 우리는 책임을 물었고 국가는 책임을 묻었다’는 부제를 단 <책임을 묻다>(굿플러스북, 2024)의 프롤로그 시작 글이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하는 아침이다. 10년 전 침몰하는 배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지만, 아이들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면 관련 도서들이 출간된다. <책임을 묻다>를 함께 쓴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아빠들과 엄마들이다. 글 앞에서 소개한 <책임을 묻다> 외에도 4·16재단이 기획한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 에세이 <월간 십육일>도 출간됐다.       


부모가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던데,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가슴에도 묻지 못할 지난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안전망이 상실되고 어른들의 과오가 남긴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생명들과 살아있음에도 지우지 못할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모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우리 국민이다.      


필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잔해를 보존하고 있는 목포 신안에 세 번 다녀왔다. 색이 바랜 노란 리본들은 시간이 무척 흘러갔음을 보여줬다. 멀리 서서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세월호 파편들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잔해들이다. 세월호 참사의 녹슨 조각들은 해풍을 맞으면서 그대로 화석처럼 굳어있다. 세월호 잔해들을 보는 마음이 너무나 쓰린데 유가족들의 심정은 어떨지 가늠이 안 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고 문재인정부가 탄생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등은 제대로 완결되지 않았다. 신안 앞바다에 덩그러니 놓인 세월호 잔해처럼 유가족들의 마음도 세월 따라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까지 오면서 유가족들과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을 것일까? 참사 이후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망을 위한 법과 제도적 보완을 위해 국가는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책임을 졌는가? 참사 이후에도 윤석열정부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 등 우리 사회에는 크고 작은 국가적 참사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이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내년에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이태원 참사, 채상병 사망사고 등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참사들이 있다. 국가적인 참사를 매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 참사를 의미 있게 기억할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지는 태도와 법과 제도 마련이 더 중요하다.     



가만히 있는 자들의 비극은 아직도 진행형이다(사진=정윤희)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2015)에 이어 <가만히 있는 자들의 비극>(2016)을 쓴 이충진 한성대 교수는 한국 사회의 야만성, 침해된 인권 등 세월호가 우리에게 보여준 한국 사회의 민낯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가만히 있는 자들의 비극이 연속되지 않는 방안을 제시했다.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삶에 책임지지 않는 자이다. 책임지지 않는 자는 말할 자격이 없는 자이다. 말하지 않는 자, 말하지 못하는 자는 물론 죽은 자이다. 그러니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것, 그것만이 ‘지금 여기’의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인 셈이다.”      


우리에겐 가만히 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글/ 정윤희 (책문화생태학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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