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모험길

정윤희 소설

by 정윤희

어린이자료실 안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낮은 목소리,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주는 다정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행복도서관은 최근 어린이 도서관을 새롭게 개편하며,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행복도서관의 어린이 자료실은 기존의 전통적인 서가 배치를 벗어나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탐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넓은 마루바닥에는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었고, 곳곳에 작은 계단형 좌석과 낮은 책장이 배치되어 있었다. 책장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그들이 쉽게 책을 꺼내고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어린이 자료실 곳곳에서는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네 살배기 여자아이는 알록달록한 그림책을 손에 들고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그 옆에서는 여덟 살 남자아이가 공룡 도감을 펼쳐 들고 친구에게 “이게 티라노사우루스야!”라고 신나게 설명하고 있었다. 한편, 한 쌍둥이 자매는 서로 다른 책을 읽다가 갑자기 바꿔 읽으며 깔깔대고 있었다.

도서관 곳곳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책 속 모험길’이라는 작은 탐험 구역에서 숨바꼭질을 하듯 책장을 오가며 친구를 찾고 있었다. 한 아이는 “여기 숨어 있으면 아무도 못 찾을 거야!”라며 작은 독서 공간으로 몸을 숨겼고, 또 다른 아이는 “내가 먼저 도착했어!”라며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친구들과 경쟁하며 놀이를 이어갔다.

제이는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부모님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그녀도 이렇게 도서관에서 아버지와 함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제이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동화책을 읽었고, 아버지는 늘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녀는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공허함을 느끼곤 했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쪽이 시큰해졌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며 책장을 정리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그리고 부모들에게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 주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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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도서관은 부모들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부모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의 위주의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부모들도 아이들과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참여형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날 오후, ‘부모와 함께하는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이 열렸다. 제이와 어린이실 담당 사서인 희정이 진행을 맡았다.

“오늘은 『마음의 색깔』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각자의 감정을 표현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거예요.”

희정이 따뜻한 미소로 부모들에게 말했다.

한 어머니가 손을 들었다.

“이 책이 감정 표현에 도움이 된다던데,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제이는 설명을 덧붙였다.

“책을 읽고 나서 아이에게 ‘오늘은 어떤 색깔 기분이야?’라고 물어보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색깔로 표현할 수 있어요. 이를 통해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죠.”

프로그램이 끝난 후, 부모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는 그냥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만 했는데,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읽으니까 더 의미가 있네요.”

“맞아요.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부모들의 태도가 점점 변하고 있었다. 단순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아이와 교감하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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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서관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책으로 키우는 아이, 대화로 키우는 부모’라는 이름의 연속 강연을 마련하고, 독서교육 전문가와 심리상담사, 그리고 부모 멘토링 그룹을 초청했다.

강연 첫날, 독서교육 전문가가 강단에 섰다.

“아이들은 부모가 어떻게 독서를 대하는지를 보고 배웁니다. 부모가 즐겁게 책을 읽고,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이날 강연을 들은 부모들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더욱 의미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중 한 부모는 제이에게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예전에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된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이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하지만,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이 도서관의 풍경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더 자유롭게 책을 읽고,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매개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도서관 구석에서는 한 아이가 동화책을 읽다가 친구들과 책 내용을 연극처럼 꾸며보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 커다란 그림책을 펼쳐 놓고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책 속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만의 결말을 상상하고 있었다. 도서관 중앙에서는 작은 계단형 독서 공간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며 책을 손에 쥐고 마치 모험을 떠나는 듯한 놀이를 이어갔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이는 이 변화를 보며 행복도서관의 미래를 다시 한번 그려보았다.

‘책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일 수도 있구나.’

도서관이 앞으로도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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