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가 독서의 해’와 책 읽지 않는 대한민국
[정윤희의 문화민주주의]
AI 시대, 독서강국이 곧 문화강국
– 영국 ‘국가 독서의 해’와 책 읽지 않는 대한민국
글/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문화콘텐츠 박사)
“읽기의 즐거움은 교육의 핵심이며, 부모의 독서가 아이들의 인생 기회를 결정짓는다.”
영국 교육부와 National Literacy Trust는 2025년 7월 7일 공식 발표를 통해, 2026년을 ‘국가 독서의 해(National Year of Reading)’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영국 브리짓 필립슨 교육부 장관의 이 선언은 국가의 미래를 독서에서 다시 설계하겠다는 정책적 결단이다. 영국 정부는 2026년을 ‘국가 독서의 해(National Year of Reading)’로 지정하고, 부모와 아이가 하루 10분 함께 책을 읽는 ‘읽기 혁명’을 전 국민적 운동으로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이다. 책을 읽는 능력이 곧 생각하는 능력이며, 민주사회의 핵심 역량이자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다.
이재명 정부는 ‘문화강국’을 표방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정책은 콘텐츠 수출뿐만 아니라 국민의 문화적 기본권과 지적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며, 그 중심에 ‘독서’가 놓여야 한다.
영국이 발표한 ‘국가 독서의 해’는 단순한 교육 캠페인이 아니다. 세 가지 구조적 위기, 즉 문해력 저하, 교육 격차, 사회이동성 정체를 독서로 돌파하려는 국가 전략이다. 현재 8~18세 청소년 중 여가 시간에 책을 읽는 비율은 3분의 1에 불과하고, 초등학교 시기의 문해력은 성장 후 생애 소득에서 약 6만 5천 파운드(한화 1억 3천만원)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분석이 정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공동체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프리미어리그, 출판사, 도서관 등 30여 개 기관과 협력해 여름방학 동안 7만 2천 권의 책을 무상 배포하고, 전국적인 독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AI 시대라는 환경이 더해진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지만 비판적으로 읽고 이해하며 의미를 재구성하고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능력은 인간 고유의 역량이다. 즉 AI 리터러시 역량을 길러주는 활동이 독서이다. 독서는 학습을 넘어 인간의 지적 주권을 지키는 가장 본질적인 문화 행위이다.
문화강국을 표방하는 한국은 어떤가?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1년에 1권의 책도 읽지 않는 나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994년부터 국민독서실태조사를 조사하고 있는데, 성인의 국민독서율은 1994년 86.8%에서 2023년 43%로 하락했다.
현재 국가의 독서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국 출판인쇄독서진흥과이다. 문화강국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과 문화체육관광부가 독서 정책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이며, 독서 정책을 총괄하는 국 단위의 조직을 신설하여 국민의 독서활동을 지원하는 문화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하나의 국 단위에서 저술, 출판, 도서관, 지역서점, 독서정책을 총괄해야 한다.
윤석열정부에서 예산 삭감 등 책문화생태계를 고사시키는 일들이 일어났다. 저술, 출판, 도서관, 서점, 독서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할 정부가 예산 삭감을 통해 문화토양의 기반을 망가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삭감된 예산은 이렇다.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13억원) 전액 삭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7억원) 전액 삭감, 세종도서-문학나눔 통폐합(25억원) 삭감, 국민독서문화 확산 지원(59.85억원) 전액 삭감, 서점 문화활동 지원(6.5억원), 도서관 정책 개발 및 서비스환경 개선(52.4억원) 삭감, 도서관 기반 조성(30.8억) 삭감, 도서관 실감형 창작공간 조성(19억원) 전액 삭감.
이재명 대통령은 책과 인문학, 문화적 사유의 힘을 강조해 온 정치인이다. 이제 그 철학이 정책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독서정책은 문화정책의 핵심축이며 문화강국 비전의 출발점이다. 대통령실은 문체비서관실을 중심으로 국가의 독서정책을 직접 챙기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출판, 도서관, 인문학, 지역문화까지 아우르는 책문화생태계의 총괄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한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 독서정책 선언, 전 국민의 독서력 회복 캠페인, 공공도서관과 지역서점의 연계 정책, 초중고 학교도서관 사서교사 배치(현재 평균 13%), 청소년 독서지원 종합계획 등 구체적인 실행이 필요하다. 이는 문화정책의 가장 기초적인 기반이다.
또한 독서정책을 단발성 행사나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 문화기반 정책으로 재정의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통령실과 문체부가 명확한 정책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문화강국’은 더 깊은 사유를 가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 영국이 책장을 넘기는 아이들의 손끝에서 미래를 구상하듯 한국 역시 독서에서 새로운 문명 전환의 비전을 찾아야 할 때다.
AI 시대, 독서강국이 곧 문화강국이다. 읽는 인간이 사라지면, 생각하는 사회도 함께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