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빨대 구멍, 그리고 어느 밤의 몽쉘

샤이니 <이별의 길> 가사 기반 짧은 이야기

by 우장산 오소리

(실제와는 다르고,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그와 그녀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러닝, 그녀는 이제 막 시작한 헬스. 그녀는 처음 헬스를 배워 본다며 재밌어하고 있고, PT 스케줄을 달력 가득 채워 넣었다. 건강함 넘치는 몸을 뽐낼 수 있을 것이라며 신나 있는 그녀를 그는 가만히 지켜본다. 그녀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옷, 머리, 화장, 몸 등등… ‘우린 이렇게 다르네...’ 그는 보이지 않는 본질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그것을 강요하거나 티 내진 않았다. 항상 이렇게 생각만 했고, 새삼 이 근본적인 문제로 언젠가 헤어지게 될 것이라는 걸 예감하고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며 일단 넘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사실 남자는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매너리즘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어쩌면 이 관계가 시작되기 전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관계 때문에 매너리즘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삶에 어느 정도의 권태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이 관계가 다가온 것이다.


그에게는 삶이나 연애나 비슷했다. 한창 애착을 가지다가도 지긋지긋해지고 그러다가도 새로운 면모가 보이면 다시 눈을 반짝이고, 언젠가는 마무리될 날이 올 거라는 걸 알아도 지금은 그저 걸어갈 ‘길’ 같은 것. 사랑의 길은 곧 이별의 길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빨대 구멍이 한 개이냐 두 개이냐와 같은 질문과 맥락이 닿아있었다. 입구와 출구의 개수보다는 일단 시작된 길 위에서 정해진 행선지로 걸어가는 길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 그에게는 삶이나 연애나 이렇게 빨대 구멍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다투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감정을 소진하면 다시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꺼내지 않았다기보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솔직한 편이라며 모든 걸 쏟아냈고 지난 일이 언급되기만 하면 피곤해하며 그냥 넘어갔다. 그는 속에서 정제시키는 사람이었다. 싫다, 별로다, 힘들다 이런 말을 내뱉는다고 다 나아지기라도 할까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를 쏟아내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고 감정은 정제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일이어도, 작은 일이어도 거슬린다면 지금이라도 되짚어야 한다.


그녀는 그가 답답했고, 그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폭포였고, 그는 저수지였다.

그녀는 쏟아냈고,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좋다가도 일말의 흔들림을 느끼곤 했다. 둘은 서로 너무 달라서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의 연애는 자신에게 부차적인 것이고 자신의 미래와 일에 더 정진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며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와주기만을, 아닌 척 기다리고 있었다. 나쁜 사람은 없다. 그냥 서로 너무 다르고, 하필 이런 타이밍에 만나서 이별의 길을 걷게 된 것뿐이다. 그리고 그 길의 시작점은 같았지만 목적지는 이토록 달랐다.


그는 서서히 그녀를 흘려보냈고, 그녀 역시 그에게 고여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공원에서 러닝을 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갑자기 몽쉘이 먹고 싶어졌다. 웬 몽쉘. 초콜릿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면서 발은 무인으로 운영되는 편의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길을 걸어가는데 웬 노래가 들려왔다. 가사는 이랬다.


'사랑을 숨길 수가 없듯이 (또 느껴지는) 이별도 숨길 수가 없잖아

사랑을 시작한 그 순간이 다르듯 이별도 그런가 봐'


몽쉘 박스를 하나 들고 나오면서 노래를 곱씹었다. 박스를 열어 몽쉘 하나를 꺼내 들고 봉지를 천천히 뜯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별이구나, 이제 곧.’

천천히 뜯어지던 봉지가 갑자기 확 뜯어지며 몽쉘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수레바퀴처럼 터덜거리며 구르다가 멈춘 몽쉘은 하염없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몽쉘을 보던 그는 집어 들고 바로 한입 베어 물었다. 바닥에 떨어졌어도 3초 안에 먹으면 괜찮다지만, 그것보다 몇 초 더 지나고 먹어도 맛은 똑같았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졌던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 본질이 더. 몇 초 동안 떨어져 있었는지보다 여전히 몽쉘의 맛은 맛있다는 게 더 중요했다. 몇 초를 굴렀을까, 세어보고 먹을까 말까를 결정하는 것은 그 몽쉘을 그 정도로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으로 느껴졌다. 남은 몽쉘을 입에 다 집어넣고서야 그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별이구나…’


그리고 둘은 헤어졌다. 그는 새로운 몽쉘을 사지 않았다. 그날 하나를 먹고 나서 나머지는 먹지 않았다. 좋은 헤어짐은 없다지만, 크게 싸우거나 얼굴 붉히거나 저주하지 않고 조용히 인사하며 돌아설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되돌아가 그녀를 잡을 일은 없겠지만, 이대로가 좋았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고 했던가. 그래도 지금의 그는 혼자 걷는 길을 원하는 대로 느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언젠가 이 걸음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이 길에 합류할 때가 또 올 것이라 믿으며, 헤어진 그녀 역시 그런 기대감으로 같이 걷기 시작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그는 오늘도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