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난해한 인간 이해

사람을 정의한다는 것

by 우연과 상상

오늘 언니의 생일이라 엄마 집에 모여 간소하게 파티를 했다. 배달 음식도 나눠먹고, 케이크도 자르며 함께 저녁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 사이에 아이돌 한 명(조카다)이 있어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나의 조카 사랑은 조금 특별할수밖에 없는데, 조카의 탄생의 순간 다름 아닌 내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의 출산 예정일 2주를 앞둔 날, 형부가 갑자기 해외 출장에 가게 되어 병원에 들렀더니 의사가 아직 나올 때가 멀었으니 걱정 말고 출장을 다녀오라고 말했단다. 그리고 형부가 출장을 떠난 바로 그 날, 양수가 터졌고 조카가 나왔다. 하필이면 엄마도 시골에 가 있어서 그 밤에 올 수가 없었고, 내가 밤새 언니 옆에 있었다. 언니의 출산 과정을 전부 다 지켜봐서 그런지 애틋한 마음이 더 커졌고, 조카가 태어난 뒤부터 한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언니 집으로 퇴근을 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조카도 나를 제일 좋아한다.


그렇게 조카와 재밌게 놀아주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조카가 "나 이모랑 살래. 나 오늘 이모 집에서 자야겠다." 하는 것이었다.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치의 불순물도 없는 순수 100%의 진심이지만, 당장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일을 어찌해야할지 자신이 없었다. 입으로는 그래, 이모랑 가자. 이모 집에 가자, 했지만 진짜로 오면 어쩌지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 순간 고모 생각이 났다. 고모는 내가 조카 나이 무렵부터 방학만 되면 방학 내도록 나를 데리고 가서 입히고, 재우고, 놀아주었다. 어릴 적 내 기억에 고모는 아주 부자였는데, 왜냐하면 맨날 피자랑 돈까스를 사주고, 백화점에 데려가서 옷도 사주고, 에버랜드도 자주 데려가주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도 항상 고모가 시집을 참 잘 갔다고, 고모부도 사람이 참 좋고 능력 좋다고 부러운 듯 말하곤 했었다. 정말로 고모네 집에 가면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최첨단 전자기기들도 많았고, 사촌 동생들이 사용하는 것들도 모두 최신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학이 되면 고모네 가는 것이 참 좋았다. 새벽 두 시까지 게임도 할 수 있고, 아침으로 라면을 먹을 수도 있었고, 주말이면 에버랜드로 놀러갈 수도 있었다. 배스킨라빈스와 피자헛 등의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고모와 함께 처음 가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빚으로 만들어진 개살구였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됐다. 고모와 고모부는 꽤 오랜 시간동안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해왔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고모와 고모부가 사실은 능력이 되지 않으면서 사치를 부렸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족들 모두 충격에 빠졌다. 그 정도가 심각해서 당장 돈을 융통해 빚을 갚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될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이 돈을 모아 급한 불을 끄기로 했다. 그 급한 불이라는 것은 당시 초중생 자녀가 있던 우리 부모님 형편에 무척 큰 돈이었고,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대출을 받게 됐다. 새벽까지 치킨을 튀기고 배달하며 가까스로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었던 부모님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여동생 부부의 사치로 인해 빚을 내게 되었다.


아빠는 자신의 동생이기에 감수할 수 있다 쳐도 엄마는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을 것이다. 엄마라고 고급 화장품과 메이커 옷 가지들을 사고 싶지 않았겠는가. 자식들에게 최고로 좋은 것을 사주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형편에 맞춰 사느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허리띠를 졸라 매고 밤잠을 설쳐가며 휴일도 없이 일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매번 메이커 옷으로 치장을 하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새언니들의 부러움을 샀던 고모가 사실은 다 빚을 내어 그런 생활을 했던 것이었으며 이제는 그 빚을 감당하지 못해 오빠가 대신 갚아줘야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으니, 엄마의 입장에서 천불이 터지지 않았겠는가. 엄마는 시누이가, 아니 시댁 식구 전부 다 미웠을 것이다. 딸의 입장에서 엄마의 마음에 깊이 이입하게 됐고, 고모가 미웠다. 고모는 나에게 정말 잘해주었지만... 백화점에 데려가서 비싼 옷도 사주고, 평소에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하도록 해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모가 정말 미웠다... 나는 고모 딸이 아니라 엄마 딸이었고, 당연히 엄마를 힘들게 한 사람은 나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30여 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부모님은 10년 만에 대출을 다 갚았고, 고모네 식구들과 만날 때면 그 일을 잊은 듯 지내고 있지만 사실 잊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도 고모를 못마땅해 하고, 고모가 유럽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거나 땅을 사서 집을 새로 지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그때 일을 꺼내며 고모 뒷담화를 한다. 빚은 안 갚고 옛 버릇 못 고치고 산다고. 고모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방학마다 나를 데려가 성심껏 돌봐줬던 일, 조카라는 이유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던 일만큼은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의 업어 키우다시피 한 내 조카도 일주일 데리고 있으라고 하면 자신이 없는데, 고모는 어떻게 방학마다 나를 데리고 갔던 것일까. 우리 가족은 부모님의 가게 일로 바빠 여행도 한 번 제대로 갈 수 없었는데, 나는 고모와 고모부 덕분에 다른 친구들과 방학 때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기죽지 않을 수 있었다. 두 분은 사치가 심했고 책임감이 많이 부족했지만, 조카들을 정말 사랑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단 한 번도 눈치를 주거나 나를 버거워하는 뉘앙스를 보인 적이 없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한없이 미운 감정이 올라오지만, 여름방학이 되면 함께 워터파크에 가고, 겨울방학이 되면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붕어빵을 사 먹었던 추억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고모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내리는 것이 나에게는 참 어렵다. 아아, 인간은 참 복잡하고 난해한 존재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