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한 사람의 목소리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내 기분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음악을 듣는 일이 아닌가 한다. 때때로 좋아하는 곡은 처음 시작하는 3초 남짓의 시간만으로도 내 기분을 바꿀 수 있다. 음악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 음악을 만든 '사람', 그런 목소리와 감수성을 가진 '사람'에 더 깊이 매료된다. 곡 자체에 대한 감탄도 물론 있지만, 그 곡을 탄생시킨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노래를 듣고 나면 "아 이 노래 참 좋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런 노래는 어떻게 만들지?", "이런 목소리는 어떻게 내지?" 하며 관련 아티스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게 된다. 이런 나도 참 집요하고 희안하지 싶다.
며칠 전, 커피를 마셔서인지 잠이 오지 않아 잘 시간이 지날 때까지 말똥한 정신으로 있었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한 아티스트가 마치 단독 콘서트를 하듯 여러 곡을 공연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곡 사이에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통해 곡에 관한 설명과 그 곡을 부를 때나 만들 때 느꼈던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끼어든다. 그날의 주인공은 가수 박지윤이었다. 그녀가 어둑한 무대 한 가운데에서 조망을 받으며 홀로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아, 오랜만이네' 하며 채널을 돌리려다가 노래 한 소절을 듣고 그대로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그 짧은 한 소절에 온 몸에 전율이 일었고 그대로 프로그램 끝까지 다 봤다. 정말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 목소리의 울림이 귀가 아니라 가슴에 바로 꽂히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음악이 언제 이렇게 깊어진걸까. <성인식>의 박지윤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음색과 섬세한 감수성에 일순간 압도 되었다. 그날 밤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전율을 느꼈던 그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와 감수성이 어째서 이렇게 깊어졌는지 인터뷰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이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음악에 대한 간절함 없이 프로듀서가 시키는 대로 같은 곡을 반복해서 노래를 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 노래가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고, 음악이 주는 의미를 알려주는 어른도 없었단다. 그러다 문득 그건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녀는 방황을 시작한다. 치열한 방황 끝에 자기 색깔을 만들어 나갔고, 자신에게 꼭 맞는 음악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직접 곡을 만들기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김연수 작가가 이런 말을 했었다. "미문을 쓰려면 미문의 인생을 살라." 박지윤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음악이 깊어지려면 일단 사람이 깊어져야 한다." 깊어진다는 건 완벽과는 다르다. 아니, 오히려 대중은 결핍을 사랑하지 않나. 결핍으로 인한 고뇌와 성찰이 그녀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내가 감동한 지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세월의 흐름은 단지 상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라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그걸 그녀가 증명해 보였다. 물론 그녀의 음악도 너무 좋았지만, 나는 음악 자체보다 박지윤이라는 사람에 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역시 사람은 내면에 있는 것이 외면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고 말이다.
https://youtu.be/VTgwLDKnU4Q?si=zvTrIbXAJ_zChRY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