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녀 육아에 대한 단상
오늘 친정집에서 조카 머리 파마를 해주었다. 미용 기술에 대해서는 1도 모르지만, 조카가 아기 때부터 내가 머리카락을 잘라주어서 자연스럽게 파마까지 해주게 됐다. 요즘은 유튜브에 하는 방법이 자세히 잘 나와 있어서 그리 어렵진 않았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 파마약 바르고 롯드 말고 중화제 뿌리고. 아직 여섯 살인 조카에겐 미숙한 이모의 손놀림이 지겹기만 했을 것이다.
다행히 파마는 잘 나왔다. 그런데 파마를 하는 내내 한 가지 억울한(?) 일이 있었다. 파마약 묻혀가며 머리를 말고 있는 건 나인데 엄마가 자꾸 조카보고 대단하다고, 저 어린 것이 머리를 대주고 있는 것이 기특하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엄마는 지금 언니 부부를 위해 조카를 돌봐주고 있다.) 나한테는 대단하다는 이야기 한 마디도 안 하면서 좀이 쑤셔하는 조카에게 평소에는 주지 않는 젤리며 사탕을 주느라 부산하게 움직였다. 아주 상전이 따로 없네, 내가 말하자 다들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조카의 수발을 들었다. 그렇다고 서운했다는 건 아니고 조금 웃겼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구나 싶고.
그러고 보면 엄마는 조카를 참 지극 정성으로 키운다. 자기 엄마(우리 언니)도 그렇게는 못 키운다. 언니는 가끔씩은 조카에게 마루코와 콩순이, 똘똘이, 티니핑을 보여주지만 엄마는 핸드폰은 물론이고 리모컨도 감춰놓고 TV도 못 보게 한다. 조카가 깨어있는 동안 매체의 힘을 빌릴 수 없으니 엄마가 눈을 떼지 않고 조카를 봐야하는데도. 물론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시리얼이나 식빵같은 메뉴는 끼니로 치지 않는다. 아침부터 꼭 밥을 해서 먹인다. 조카를 위해 김치까지 따로 담그니 말 다했다. 매일같이 어린이집 키즈 노트를 확인하고 준비물을 꼼꼼이 챙긴다. 조카가 버스가 없는 어린이 집을 다니는 바람에 왕복 3-40분 등하원 길을 매일같이 걷는다. 조카는 유아차안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엄마는 부지런히 바퀴를 굴린다. 나는 엄마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언젠가 엄마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고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가 너희들을 너무 방치한 것 같아."
그 말을 하는 엄마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육아의 기준이 높아진 지금, 요즘의 육아 프로그램은 시청률을 생각해 자극적인 워딩을 사용하기 마련이고, 부모의 사정보다는 아이가 우선이기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계속 죄책감을 가져왔던 것 같았다. 물론 어린 날의 나는 365일 TV를 끼고 살았다. 엄마가 가게 일로 바빠 집에는 늘 신라면 한 박스가 구비되어 있었고, 내 알림장을 봐 준 기억이 잘 없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가 우리를 방치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침 10시에 가게에 나가 새벽 2시까지 일을 하며 엄마는 틈틈히 집과 가게를 오갔고,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했다. 그때는 우리를 밖으로 떠돌지 못하게 해주는 TV가 고마웠을 것이다. 엄마가 해놓은 반찬이 있었지만, 당시 입도 짧고 편식이 심했던 나였기에 엄마는 라면이라도 먹길 바랐을 것이다. 새벽 두 시에 퇴근을 하는데 알림장 볼 정신이 어디 있었을까. 그래도 엄마는 늘 아침에 밥을 차려줬고, 우리가 자기 전에 집에 다녀갔다(제일 바쁜 시간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에 퇴근한 엄마가 우리를 깨웠다. TV를 켜놓은 채 잠든 모습이 안쓰러웠던 걸까. 아빠가 언니를, 엄마가 나를 업고 그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갈빗집에 데려가 갈비를 먹였다. 당연히 비몽사몽이었으니 갈비가 코로 들어가는 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 몰랐지만, 우리는 갈비를 다 먹고 노래방까지 갔다. 아마도 내가 일곱 살 때였던 것 같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건 그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그때 우리에게 못 해준 걸 조카에게 다 해주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사랑과 보살핌으로 조카는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 그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롯드를 말고 있는 딸 대신 조카의 얼굴을 향해 선풍기 머리를 돌리는 엄마를 보니 웃음이 터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훌쩍 커버릴 조카를 보며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겠지.
"할머니. 내가 차 사줄까? 집하고?"
"응 사주라. 이왕이면 강남에다가 사주라."
"강나무? 알았어. 내가 스무 살 되면 사줄게. 근데 할머니 만이다. 다른 사람은 안 돼."
조카의 말에 엄마는 조카밖에 없다며 깔깔거린다. 금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만 자라면 바랄 것이 없겠다. 아프지 말고. 몸도 마음도. 분명 할머니는 집과 차를 사주는 것보다 그걸 더 좋아하실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