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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Jun 08. 2024

편하다

순서: 1-2-3

1.
10년 전쯤에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어느 무리가 그렇듯, 초반에는 회사 동기들끼리의 모임이 활발했다. 특히 그때는 우리 기수가 역대급으로 많이 뽑힌 해라서 각 부서별로 동기들이 쭉 앉아있었고, 그래서 모였을 때 서로 간에 궁금증들이 참 많았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자리에서 어떤 업무가 처리되는지를 거의 꿰고 있지만 그때는 신입이라 서로 모르는 업무도 물어보고 정보 교류도 참 많이 했다. 아무래도 동기들끼리 있다 보니 사무실에서 말할 수 없는 내용도 많았고 고충도 많이 털어놨다.

첫 직장 생활이자 사회생활인 친구들도 많아서 '힘들다'는 하소연도 많았다. 어떤 어떤 이유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것인데 그 대상이 업무일 때도, 상사일 때도, 동료일 때도, 고객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대상에 대해 넋두리를 하다가 복받치는지 자신도 모르고 눈물까지 흘리는 이들도 있었고 주변 동기들이 달래주며 그렇게 술자리를 함께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순환 보직 업무인 데다가 연차가 쌓이다 보니 예전에 동기들이 했던 업무를 서로 경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리에 와서 업무 처리를 해보니 누구의 업무가 더 힘들고, 어떤 업무는 피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때 눈물까지 흘렸던 동기들의 업무가 사실은 회사에서 가장 쉬운 업무에 해당했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가끔 몇몇 동기들끼리 그 당시를 회상하면 '그때 힘들다고 울어야 할 사람들이 달래주고 달래줘야 할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때가 많다.


2.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때 힘들다고 말했던 친구들은 아직도 본인의 바뀐 업무가 '힘들다'고 말하고 다니며 이에 더해서 힘들다고 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경쟁적으로 자기 업무가 힘들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양심상 힘들다고까지는 안 하더라도 최소한 '편하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그런 동기는 딱 한 명 봤다.) 뭔가 지금 자기 자리가 편하다고 하면 안 될 것처럼, 혹은 힘들다고 해야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편하다'는 말을 아낀다.

직장 일 중에 편한 게 어디 있을까 싶기는 하다. 그러나 순환 보직이기 때문에 '상대적' 편함은 있기 마련이고 본인들도 인지하고 있다. 업무를 바꾸자고 하면 절대 바꾸지 않을 사람들이 막상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 '예전 네가 할 때랑 달라'를 시전 하면 황당하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특정 사람이 업무를 맡을 때마다 그 업무가 힘들어지고 떠나면 편하게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지금 현재 그 업무를 안 하고 있기 때문에 마냥 내 말이 맞다고 주장하기도 참 힘들다.

마냥 개인적 성향 탓만 하기도 쉽지 않다. 조직적 분위기도 중요하다. 만약 부서 이동을 한 후 나  혼자서 이전 부서에 비해서 현재가 '편하다'라는 말을 해버리면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심지어는 '네가 뭔데 우리 부서의 강도를 마음대로 정하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쉽사리 입 밖에 꺼내는 건 팀워크에도 방해된다.


3.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여기든 저기든 직장인들은 항상 곡소리뿐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너무 편해'라는 말을 듣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심지어 이제는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진짜로 일이 쉬운 줄 아나 싶을 때도 있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보다는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자기가 하는 일을 티 내는 사람이 고평가 받는 경우도 많다. 그 결과의 끝은 결국 모두의 입에서 '나는 힘들다'로 귀결된다.

'편하다'라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꼭 '힘들게' 일을 해야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 말이다. 업무 강도가 높다고 힘든 건 아니다. 일이 몰려도 윗사람과 동료가 눈치껏 대우해 주면 그 자체로 맘이 편해지는 경우가 많다. 몰라주니 알아달라고 서로의 입에서 곡소리가 나는 것이다. 주먹구구식이 아닌 공정한 인사고과와 명확한 평가 기준 및 매뉴얼이 마련되어야 한다. 서로 하는 만큼 인정받는 직장 문화가 정착하길 기대해 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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